육아가 적성에 안 맞는 엄마의 이야기
지금은 애둘맘이지만 한때는 딩크족이었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나서야 ‘아이를 가지면 어떨까’하며 느긋하게 임신을 계획했다. 당시 하는 일이 만족스러웠고 나만의 시간도 충분했기에 출산과 육아는 깊숙이 묻어뒀다.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기에 아이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최대한 미뤄뒀던 출산을 해치우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뭐든 혼자 해결하는 게 편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고, 계획적이고, 살림에 흥미가 없고, 인정욕구 강하고, 커리어를 중시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 엄마
코로나가 한창일 때, 2020년 봄에 아이를 낳고 7개월 뒤 재취업에 성공했다. 다들 집에서 쉬어라고 말했지만 쉬는 게 더 고역이었다. 집에서 아이만 돌보니 몸이 근질근질. 회사에 나가는 게 일종의 쉼이었다. 엄마들 사이 천운이라 불리는 좋은 이모님을 만나 새벽출근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엄마의 커리어를 존중해 주는 이모님은 나의 일정에 맞춰 아이를 돌봐줬다. 출근하며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편하게 내 일에 몰두하고 퇴근하면 육아 출근해도 오히려 에너지가 넘쳤다.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일과 육아의 완벽한 밸런스를 누렸다.
그러나 곧 예상치 못하게 또 다른 새 생명이 찾아왔다. 그렇게 인생에 전혀 계획이 없던 16개월 차 연년생맘이 되었다. 둘째 출산 직후 남편은 독일로 주재원 발령이 났고 타국에서 독박 육아가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 채 두 아이와 독일로 건너왔다.
육아는 상상 이상으로 고된 일이었다. 아이의 모든 것에 다 맞춰야 하니 먹고, 자고 등 어른의 기본 욕구는 뒷전이었다. 다행히 아이가 어느 정도 크니 뒤틀렸던 기본 욕구도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정작 나의 복병은 육아에 맞지 않는 성향이었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건 하나의 숭고한 세계를 만드는 것과 같다.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절대 몰랐을 기쁨. 아이가 주는 행복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아이를 키우며 희생도 따랐지만 아이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육아로 마주하기 싫은 내 밑바닥을 보기도 했지만 인내심도 커졌다. 자식은 그랬다. 아이는 나도 모르게, 나조차도 인지하기 어려웠던 내 안의 결핍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렸다. 이래서 아이를 낳고 키워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쁜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별개로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했던 난 아슬아슬 외줄 타기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갰다. 나에게 육아는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등 최소한의 욕구만 채워주면 될 일이었다. 잠을 줄이더라도 어떻게든 내 시간을 만들어야만 했다. 난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한 사람이었다. 개인 시간이 주어지면 독일어를 익히고, 블로그에 한 줄 더 끄적이고,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채우는 나에게 딱 맞는 종착지였다.
누군가는 타국에서 육아하며 어떻게 이것저것 다 하느냐며 놀라지만 살림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 못할 것도 없다. 넷플릭스도, 유튜브도 보지 않는다. 대신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부터 두드린다. 숨통을 틔우는 나만의 방식이다.
도움 없이 해외에서 육아하다 보니 내가 꽤 예민한 기질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예민함이 나쁜 건 아니지만 육아에 있어서 예민 보스 기질은 고난도임이 분명하다.
예민함은 아이가 있기 전 자유로운 몸으로 일할 땐 효율적인 도구였다. 호기심이 많고 관찰력이 뛰어난 덕분에 기자란 직업은 딱 맞는 옷이었다. (기자는 취재 계획을 미리 세우고 이슈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세상을 보고 사람을 통해 이야기를 들으며 기사(글)를 쓴다)
그러나 변수가 많은 육아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예상과 달리 일이 흘러가는 건 기본이고, 상대방이 작은 아이다 보니 말이 안 통했다. 더군다나 혼자만의 시간은 사치였다.
예민한 엄마는 굳이 표현하자면 연비 최악의 고성능 엔진을 달았다고나 할까. 그 상태로 아이에게 묶여있는 거다. 타국에서 전담육아하며 이런 기질의 내가 너무 싫었다. 주재원 남편 따라 독일에 왔으니 장보고, 요리하고, 아이들만 돌보는 삶도 충분할 텐데. 난 왜 이럴까. 살림과 육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해도 해도 도무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대신 나만의 커리어를 위한 무언가를 자꾸만 찾고 도전하고 헤맸다. 길을 잃어도 그저 행복했다.
그 와중에 시간은 착실히 흘렀다. 어쩌면 독일에 오지 않았더라면 ‘육아와 결합된 나’가 누군지 몰랐을 테다. 타지에서 힘겹게 육아하며 고독한 시간을 보냈기에 나를 알아가고, 나라는 사람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엄마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