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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기자 Dec 08. 2024

독일 선배맘이 알려준 육아 번아웃·우울 극복법 세 가지

육아 분담•운동•말이나 글로 마음 다스리기


이웃집엔 프랑크푸르트 토박이 나탈리아가 산다. 그녀는 만 11, 13세 두 딸을 둔 워킹맘. 일과 육아 사이 팽팽한 줄타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지혜롭게 다루는 13년 차 선수급 엄마다.


일전에 그녀는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로 내 정신을 번뜩 들게 했다. 시간이 쌓여야 마음을 여는 독일인 답지 않게 본인 스스로 오픈 마인드라고(open-minded) 칭한 나탈리아. 그런 그녀의 성향은 어쩜 어머니로부터 왔을지도 모른다. 나탈리아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직장으로 쿠웨이트에 몇 년 살았었다.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어린 두 자녀의 손을 잡고 "오늘은 이 마트, 내일은 저 마트 가보자"며 낯선 쿠웨이트 땅에서도 모험을 주저하지 않으셨다고.

난 과연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아랍어와 영어만 통하는 낯선 땅에서 다닐 수 있었을까. 2022년 입독 당시 아이 둘 데리고 집에 4개월 정도 갇혀있었던(첫째 기관 보낼 곳이 없어) 나 자신이 떠올랐다. 이후 용기를 내서 아이들과 이곳저곳 다니며 깨달은 건 두려움은 스스로 알을 깨야만 극복할 수 있다는 거!

40여 년 전, 나탈리아 친정어머니의 용기가 아이 둘과 독일로 건너온 나에게 어찌나 큰 울림이 되던지. 작든, 크든 상관없다. 무엇이든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Out of your comfort zone
안전지대 벗어나기

나탈리아는 꽤 오래 한 직장에서 일해 어느덧 관리직이 되었다. 편하게 주어진 일만 하다가 갑자기 원하지 않던 연말 프레젠테이션이 주어졌을 때 마음의 요동이 쳤다고. 귀찮음과 편함에서 안주할 것인가, 벗어날 것인가. 결국 그녀는 pt를 멋지게 해냈다. 인생은 늘 그렇듯 새로운 일이 찾아왔을 때 도전해야, 편한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 단계 발전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번아웃 얘기를 해야겠다. 타국에서 미취학 아동 둘, 16개월 차이 나는 연년생 육아를 전담하다 보니 올 게 왔다. 타국육아 2년째 어느 봄날, 스멀스멀 그분이 찾아온 것! 육아 번아웃, 아니 우울 깜빡이가 켜졌다. 병원 가서 진단만 받지 않았을 뿐. 우울감을 넘어선 우울증이 왔다는 걸 알아챘다.


당시 상황은 심각했다. 아이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내 귀를 막고, 우는 아이 입을 내 손으로 틀어막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고 싶어. 밀실에 갇혀 있거나 외딴섬에 홀로 떨어졌으면… 아무도 날 안 찾았으면 좋겠어.‘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오면 불안도는 올라갔다. ’나 말고 픽업 갈 사람이 없는데 어쩌지. 너무 가기 싫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모든 게 무기력했다.


이렇게 지옥불을 건너고 있을 때였다. 육아 선배맘인 나탈리아가 문득 떠올랐다. 언어도, 나라도 다르지만 신기하리만큼 말이 잘 통했던 그녀. 나탈리아의 모국어는 독일어, 난 한국어. 서로의 언어가 다르니 우린 늘 영어로 얘기를 나눴다. 진심이 통하는 대화엔 언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그녀를 통해 깨달았다.


나탈리아는 ‘컴포트 존’ 조언에 이어 이번엔 마음 아픈 나에게 딱 맞는 처방전을 내려줬다. 육아 번아웃, 우울 극복법은 크게 세 가지!

2023년 가을 1박2일로 파리 다녀온 자유부인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차올랐다.


1) 엄마들이여, 육아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지 마라!


육아는 자의든 타의든 엄마의 거대 과업이다. 엄마가 아이들 주 양육자인 경우가 많을 테니까. 등원 준비, 픽드롭, 남편 퇴근할 때까지 아이 케어 관련 모든 것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아이들 기관 가는 시간에도 마음 놓고 쉴 수 없다. 나의 경우 틈틈이 일하면서 집안일, 장보기 등 미션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가뜩이나 주재원 아빠들은 출장이 많다. 남편 출장이 주말에 걸쳐있다면? 엄마는 그야말로 아이들과 하루종일 붙어있어야 한다. 당연히 해외에 거주하다 보니 아빤 회사로 출근하고(요즘은 주재원 엄마도 늘어나는 추세), 자연스럽게 엄마가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한국에 있다 하더라도 워킹맘이든 전업맘 누구나 슈퍼맘이 되어야 한다. 어느 순간 육아 과부하가 오기 마련. 육아 번아웃, 우울감, 심하면 우울증이 찾아오는 건 시간문제다.


주말이나 휴일 등을 이용해 공동 양육자(주로 남편)에게 아이를 온전히 맡겨라! 아이가 엄마만 찾아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남편이 아이를 잘 못 본다고? 그럼에도 아이가 아빠와 같이 보내는 시간을 애써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도 아빠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편해지고, 남편의 육아력도 자연스레 올라간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엄마에게도 결국 모두에게 윈윈!


짧게는 한 시간이든, 서너 시간이든, 1박까지 이렇게 시간을 늘려 아이를 아빠에게 맡겨야 그들(아빠)도 안다. 어른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게 얼마나 고된지, 안 그러면 아빠들은 절대 모른다는 만국 공통의 얘기! 나탈리아 말론 독일 아빠들도 그렇단다. 허허.


이렇게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적극 외출하라!" 는 게 첫 번째 우울 극복 팁이다. 다행히 남편은 육아 참여도가 높은 편이다. 육아 한 팀이 되어 철저히 분업을 해야 타국에서 버티며 살아갈 수 있어서다. 끈끈한 육아 전우애로 파이팅 넘칠 때가 많지만, 어쩔 땐 서로 예민 보스가 되어 원수지간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과 번갈아가며 각자의 시간, 미타임(me time)을 충분히 보낼 수 있게끔 서로 적극 밀어주기로 했다.



2) 마음이 무거울수록 몸을 움직여서 가볍게.
운동 필수!

이 사진이 뭘로 보이나. 프랑크푸르트 우리 동네서 마주한 유럽 부모들의 모습이다. 아빠는 아이를 태운 안행어(Fahrradanhänger)를 밀며 달리고, 옆에서 엄마 역시 조깅 삼매경이다. 이들이 독일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가 어리든, 상황이 어떻든 간에 건강한 삶을 챙기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생경한 풍경이라 저 멀리 떠나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주어진 상황에서 그저 묵묵히 운동하는 유럽인들. 일요일 아침에도 독일 동네에서 유일하게 문 연 곳은 빵집과 헬스장이다. 그만큼 체력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 엄마 운동하는 동안 아이 봐주는 헬스장도 있는 거 보면 독일인들은 운동에 진심인 게 분명하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육아나 업무 등으로 오는 스트레스,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이날도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고 헬스장에 다녀왔다. 막상 몸을 헬스장에 갖다 놓으면 천국의 계단이라도 타는데 헬스장까진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임에도) 천리 길이다.


체력이 뒷받침해야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도 다 해낼 수 있다. 이런 진리를 뻔히 알면서도 왜 운동은 뒷전일까.


운동을 우선순위에 두고 올 남은 한 해를 마무리하려 한다. '아이 둘 키우는 엄마라서 운동할 시간 없다는 말은 하지 않기. 어떤 상황이든 핑계 대지 않고 홈트라도 꾸준히. 체력왕으로 거듭나기!' 소소하지만 거대한 목표다.


3) 말이나 글로 감정 다스려라!


나탈리아가 보내준 힘나는 메시지


말이나 글로 감정을 다스린다고? ‘말은 쉽지’ 잘 안다, 아무렴, 특히 속마음이 지옥 같을 때 주변인에게 어찌 털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타국에서 유일한 어른 가족인 남편 역시 업무로 바쁘고, 답답한 마음 털어놓고 싶어도 애들 잘 때까지 우린 경주마나 다름없다. 육퇴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에, 몸이 고되다 보니 남편과도 점점 말이 없어진다. 배우자와 와인 한 잔 하며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아이들 잠들 때 같이 곯아떨어진다. 어쩔 땐 아이들보다 먼저 잠든다 허허.


어린아이 전담 육아하는 엄마들은 남편에게 기대치를 낮추고 스스로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특히 해외서 육아하는 엄마들! 아니면 우울, 번아웃이 본인도 모르게 까꿍 하며 순식간에 찾아온다.


마음의 결이 맞는 육아 동지들과 고충을 나누는 것도 좋다. 타국에서 육아하는 엄마들은 서로 눈빛만 끄덕여도 통하는 게 많으니깐. 그러나 이 또한 불편하다면..


때론 본인을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국이었으면 병원 상담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겠지만 해외에서는 모든 게 자급자족. 다행히 나에겐 이웃 나탈리아가 대나무숲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하다 보면 속 시원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언어는 장벽이 아니라 도구일 뿐이다. 오히려 아이 둘 키우는, 일하는 엄마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일까. 찰떡같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주옥같은 조언을 남기는 그녀. 독일살이에서 큰 자산 중 하나다.


여러 상황상 말보다 글이 나을 때도 있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 쓰는 이유도 그중 하나다. 다른 날보다 유독 힘겨운 날, 노트북을 펼쳐 메모장을 켜놓고 지금 이 순간 감정을 타닥타닥 써 내려간다. 이 감정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그렇게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자판을 두드리면 실타래처럼 얽혔던 감정이 조금씩 풀리는 걸 느낀다. 이렇게 글쓰기는 답답한 마음 셀프 해소로 딱이다.


육아로 힘겨워하는 엄마들에게, 맞춤형 육아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을 테다. 본인에게 맞는 해소법을 찾아 나를 다독이기. 아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인 나를 토닥이는 게 더 중요하다.


한참을 울다가 갑자기 나탈리아와 배꼽 빠지게 웃었던 순간이 있었다. 아이들 키우다 보면 하나의 산(고비)이 지나갔다 싶으면 이후에 또 대여섯 개의 허들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경우 갑자기 열나거나 유치원 관련 변수가 참 많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유치원 적응기에 발 동동거리는 연년생맘인 나에게 중학생딸을 키우는 육아 선배맘인 친구가 해 준 말이 있다.


"네가 지금 그 시간 통과하면서 얼마나 멋져지고 있는지는 지금 모를 건데, 멋지다. 진짜 타국에서.. 나도 애 아파서 이불 싸들고 입원을 밥 먹듯 하고, 또 적응 때문에 울고, 옮기고 등등…“


“우리는 이런 변수에 적응하는 유연함과 초연함도 생기고, 이렇게 쌓이면 싱글들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지혜와 노련함으로 삶을 살 수 있다고 봐”



결국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큰다. 뻔하지만 진리다. 육아하는 엄마 역시 배우고 성장한다. 그렇게 엄마는 단련된다. It will make me stro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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