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술은 음식이라 괜찮다고 하셨다

by 노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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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급적 글을 쓸 때 가족이나 주변 지인의 이야기를 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허락을 받았다 하더라도 나중에 혹시 나의 못난 글쓰기 솜씨가 그들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 글에 꼭 담고 싶습니다. 이 글이 나오는 것을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니, 다른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는 죄책감을 가질 것이고, 상처를 받은 다른 가족들도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슬프고 괴로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술로 인해 우리 가족은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술은 음식이라 괜찮다. 적당히만 먹으면 돼."


그런데 인간이었던 아버지는 매우 인간적이게도 적당히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술을 먹고 실수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술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조절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임계점을 넘은 술은 실질적으로 몸의 주인을 지배하기 시작하지요.


술이 술을 먹는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술을 먹다가, '아, 취한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마셔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이를 즉각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곧 실수를 해서 다음 날 아침에 후회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정신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란 복잡한 사고체계를 뇌에서 처리하고 희노애락을 오장육부에서 느끼며,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 것인지를 분석하고 그에 맞도록 처신하려고 하는 염치라는 장치의 통제를 일부 받게 됩니다.


인격 수양이 덜 된 저의 경험입니다만, 급한 일이 있는데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으며 자주 신호도 위반하고, 손에 쓰레기가 있는데 아무도 안 보면 슬그머니 옆에 내려놓기도 하고, 슬쩍 새치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술에 취하게 되면 타인을 의식하게 되는 이 염치라는 장치가 고장이 나게 됩니다. 오히려 규칙을 위반하려고 하고, 그동안 억눌려왔던 감정 덩어리가 마음 밖으로 튀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소리치지요. "놔둬, 내가 누군지 알아?"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라는 아재 냄새 만렙의 추임새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용감한 목소리가 나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주변에 술을 먹고 함께 탈인간을 준비하는 몇몇 애벌레 상태의 취객들이 그 신호를 감지하게 됩니다. '어쭈, 저 놈 봐라? 참교육이 필요하겠는데?' 이러면서 일촉즉발의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눈이 마주치고, 어깨가 부딪히고 기어이 싸움이 벌어집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20대 시절 지인들과 술을 먹다가, 싸움에 연루되어 지구대를 거쳐 경찰서까지 간 경험이 있습니다. 서로 치고 받았기 때문에 벌금형으로 끝났지만 야간에 다수의 상대에게 얻어 맞은 저로서는 못내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억울하면 뭐합니까? 그저 술이 원수지요.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반성하면서 조심하며 살아 왔습니다.


다시 아버지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아버지는 술을 즐겨 드셨고, 때로는 그 한계를 위험하게 넘나들기까지 했으므로 언젠가는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덩치가 큰 장남인 나를 조심스러워 하셨는지, 제가 있을 때는 큰 사건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군대를 가고 나서는 아버지는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전역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여동생을 통해 무척이나 힘들었다던 이야기를 듣고 무척 화가 많이 났습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아버지에게 고분고분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부조리한 권력이나 억압에는 온 몸으로 저항하는 편입니다.


군대를 막 전역한 혈기왕성한 젊은이를 아버지는 당해내지 못하셨습니다. 폭력에 대항하여 차마 아버지를 때리지는 못했으나, 정말 때리기 직전까지 가고, 그 상황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집안 집기 몇 개를 보란 듯이 부수어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나는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제가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가끔은 염치가 고장난 아버지는 밖으로 걸어나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걸 보면, 쌓인 것이 많으셨나 봅니다. 평소에는 몸가짐이 정갈하시고, 규칙을 잘 지키시는 아버지가 내면에는 많은 스트레스를 감추고 있었다고 생각이 드니, 지금 생각해 보면 측은합니다.


내가 지금은 그 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도 직장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으로서 겪는 부담과 고충이 많았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와 중년들이 마찬가지겠지요. 인생의 절반쯤 살아가면서 몸은 여기저기 고장나고, 생각처럼 인생이 살아지지 않는 것에 대해 많은 실망과 자괴감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술을 빌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절대 안됩니다. 요즘에서야 국가적으로 주취폭력을 강하게 벌하고 있습니다만 생각보다 술로 인한 사건사고 비율은 매우 높습니다.


고작 술로 인해 사람이 다치고 죽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총기 자유소지를 법적으로 허가하는 미국에서 총기 제조업체들의 정치권 로비가 매우 강력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해마다 어린 생명들이 총기사고와 테러 등으로 희생되고 있음에도 자기방어권을 헌법에서 보장했다는 이유로 무분별한 총기 사용이 아까운 생명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나라도 대형 주류회사들의 로비로 인해 주류판매 단속이 느슨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최근 한강에서 술을 먹던 두 젊은이 중 한 사람이 주검이 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한강공원과 같은 공공구역 전체를 금주지역으로 선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물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입니다만, 적어도 이런 반성과 조치들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미국에서는 개봉된 술을 야외에서 가지고 있다가 적발되면 매우 큰 벌금과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술만 파는 리커샵이 따로 있고 이것도 오후 9시가 넘으면 술을 구매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속히 이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식당에서 자정까지 술을 파는 건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일반 24시간 편의점 등에서 술을 24시간동안 판매하는 것은 금지시켜야 마땅합니다. 미성년자의 주류구입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술을 음식이라고 생각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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