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
# 19. 회사 화장실 안
밀대를 받은 G이사가 말한다.
“회장 새끼와 아들놈이 집에서 서로 이야기 나눈 거야. 회장 새끼는 지 아들놈 말만 듣거든.”
나머지 밀대를 빨며 A가 말을 이었다.
“아니 핵심기술이 없는데 어떻게 정책자금 지원을 요청합니까? 말도 안돼요. Y전무 말이 맞는 거 같아요. 그냥 <나는 택시 드론>이라는 최첨단 트렌드를 SSG 회사가 하고 있는 곳으로 주주들에게 비치게 하려는 것 같아요. E상무와 T상무가 추진하는 <테슬라 상장>이 될 때까지 포장용 시간 끌기예요.”
“내가 인도 출장 때 개고생한 거 알아? 회장 둘째 놈이 마지막 날 돈 아낀다고 다른 루트로 교통편을 바꿔서 우리가 13시간 동안 쌔빠지게 차 안에서 고생했지. 그런데 회장 새끼는 나한테 짜증을 내더라고. 개새끼, 지 세끼가 했는데.”
# 20. 사무실 소파
E상무와 마주 앉은 A은 주먹을 움켜쥔다.
“핵심기술을 몰라서 X부사장에게도 물어보고 회사 간부들에게 다 물어봤지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O회장과 On법인장의 <나는 택시 드론> 프로젝트에 대해 Y전무님이 주주 포장용이라고 하셨습니다. 2개월 동안 잘 알아보라고 하셨는데 O-On 두 사람은 당장에 정책자금 5년간 100억 규모의 프로젝트를 따오라고 합니다. 핵심기술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뭐? 주주 포장용... 당신 그 말에 책임져야 해”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Y전무님 말씀을 전한 겁니다.”
“Y전무가 말했다고 해도 당신이 그 말을 했으니까 당신이 책임져야 해. 당신은 제조업에 안 맞는 거 같아. 그만 이야기하자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E상무. A는 순간. 작별을 해야 하는 예감이 들었다.
# 21. 사무실 안
종이컵 안에 이름 모를 들꽃이 꽂혀있다. 앉아서 컴퓨터 사무 일을 하고 있는 A앞으로 BB 상무가 찾아온다.
“회장님 지시 상황이야. 정당 가입하고 후원계좌도 6개월간 자동 이체하고 그다음 끊어”
그리고는 종이 서류를 내밀었다.
“예? 무슨 정당 가입 요? 아니 그것을 왜 해야 하나요?”
“회장님 지시야. 아직도 분위기 파악 안 되냐? 여기는 회장님 마음에만 들면 한 순간에 연봉도 올라가고 뭐든 바뀌잖아. 찍히면 당장 나가야 하는 곳이야”
수습 2개월 완료를 며칠 앞두고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A도 지금껏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다. 그것은 지난 12년 동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소신껏 글을 써왔다. 국회 출입기자로 이름 있는 매체에 있었을 때도.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생각이라며 자기 마음이 끌리는 대로 취재하고 싶어서 선택했던 게 시민기자였다.
그 힘든 인터넷 1세대, 24시간 대기하는 기자 일을 하면서 틈틈이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썼다. 한 건당 2천 원. 돈보다는 ‘참여와 봉사’라는 마음에서였다.
13년이 지나면서 다른 매체 활동보다 더 값지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시민기자 타이틀이었다. 누구의 지시 없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써갔던 그의 글들이 그 무엇보다 값지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여기서 A만의 공리(公理)가 있었다. 여당과 야당, 그 어떤 정당에 가입하지 않고 진보와 보수 등에서도 객관적인 잣대를 가질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했다. 지난 12년 동안 변변한 살림살이, 돈 하나 집에 갖다 주지 못했지만, 그의 자부심만큼은 컸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오늘날, ‘누가 진정성 있는 글을 쓸 수 있냐는 시대’에서 곧 자신을 증명할 길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정당을 강제로 가입해야만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