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시나리오-연꽃이 되다

절망

by 삼류 임효준

# 13. 사무실(회상)

오후 3시 지하 3층 사무실로 썰어서 배달된 수박들을 A는 회의실에 먹기 좋게 놓았다. 인도 출장을 앞둔 O회장과 일행 6명, 그리고 사무실 직원들 열댓 명들에게, A는 잠깐의 시원함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지붕 청소 후 맛보는 맥주 맛을 주고 싶었다.


힘들고 짜증 나는 회사 생활은 감옥과 같았다. 더욱이 회장의 권력 앞에서는 모두들 항상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고 있기에 뭔가 이탈을 강행하고 싶었다.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그 짜릿함처럼.

하지만 회의실 자리에 앉은 사람은 G 이사와 A뿐.


U이사는 못생기게 잘라놓은 수박 몇 조각만 집어서 회장실로 들어갔다. 가져가고는 회의실에 다시 오지 않았다. Q부장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BB상무는 종이컵에 하나만 넣어 자기 자리로 갔다. E상무와 T상무는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쁜 척 무시해 버렸다.


수박 2통을 잘라놓으면 얼마나 많은지, 지치도록 먹었다. 분한 마음에 계속 먹었다. G 이사는 그런 A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냐? “며 감격하며 먹었다.


배 터지도록 먹고도 많이 남은 수박들을 A는 모두 비닐로 싸서 회사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쾅 “ 닫아버렸다. 배 속 붉은 수박 물이 올라올 것 같았다.

# 14. 충북대 연꽃정원

A는 연꽃을 바라본다. A는 무작정 연꽃정원으로 들어간다. 예전에 연꽃을 따러 조심스럽게 들어가던 자세가 아니다. 귀신에 홀린 듯 그냥 발을 내딛는 것이 이상했다.

# 15. 군대생활(회상)

지난 군대 생활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다시 발작했다. 전투경찰이라는 현역으로 전라도 신안의 한 섬에 배치받아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을 겪은 A다. 목포에서 철선을 타고 다시 버스로 겨우 내려간 증도라는 섬에서 다시 바닷물 때를 맞춰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섬, 화도가 그의 모든 젊은 날의 어둠을 만들어 냈다.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켜고 살아야만 했다. 첫 배치를 받고 A는 어쩔 줄을 몰랐다. 서태지가 나오던 X세대를 대표했던 젊은이가 군에서 촛불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있어야 할 선임은 없고 작은 초소 하나에 방 2개가 딸랑 다였다. 화장실은 50m 떨어진, 그냥 돌멩이로 된 옛날 똥 사는 곳. 방 하나에는 원래 전투경찰을 관리하는 경찰이 있어야 하지만 이런 섬에 들어와 있는 경찰관은 사실 없다. 그냥 전라도 경찰 본청에 낙도의 한 섬을 지원해서 자기 시간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관례였다. 원래 이곳 책임 경찰관은 의무경찰 출신으로 최근 장가를 들면서 신혼을 즐기려고 아주 외진 섬을 골라 신청한 것이었다. TO가 2명인데 있어야 할 선임은 검문소에서 사고 치고 이곳으로 배치받고 오지 않고 휴가 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낙도, 섬에서의 생활은 회색 빛깔 인생이었다. 섬사람들의 공동체 속에 낄 수 없으면 그들의 농사와 일에는 젊은 노동력이 필요해서 간혹 도와주는 것이 다였다. 그럴 때면 섬 어르신은 돈을 주는데 절대로 받지 않은 A였다. 늙은 섬 어르신이 꼬깃한 현금을 주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온 힘을 다해 달려와 버렸다. 이들보다 나은 게 있다면 젊은 몸하나, 군대이기에 그냥 할 뿐, 시간만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 다른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선임이 오면서 이러 낭만도 없어졌다.

인천에서 깡패 하다가 온 선임은 문에 문신도 있었다. 어떻게 문신 있는 사람이 군에 올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와의 섬 생활은 지옥 같았다.

외동으로 자란 늦둥이 선임은 정말 악당이었다. 밥과 모든 것을 초소에서 해결해야 하는 섬 파견 전투경찰은 일정한 시간에 무전을 받아야 하고 특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 생활을 하면서 우물물로 길러다 아침, 점심, 저녁을 자체 해결해야 했다. 선임은 무선 받는 책임을 A에게 주고 물 길어오는 것도 모두 A에게 떠넘겼다. 단 둘밖에 없는 데도 거기서 군기를 잡고 밤에 무선을 놓치면 폭력을 가했다. ‘머리 박아’를 시키고 발길질에 서너 번 넘어져야 앉히고 군대 온 줄 모른다는 식으로 폭언과 폭행을 하며 괴롭혔다.

한 번은 노두길에 바닷물이 들어오는데도 휴가 갔다 시간이 안 맞아 증도에 있는 A에게 외롭다면 들어오라고 명령을 해서 A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노두길을 대나무 하나 긴 것을 어깨에 메고 죽음이라는 공포 속에서 건너간 적도 있었다.

며칠 뒤, 그 노두길을 건너가던 초등에와 그 엄마가 물 때를 못 맞춰 죽어 새벽에 물이 빠지고 나서야 시체가 되어 섬 가장자리에 모습을 보였다.


어쩔 줄을 모르는 상황에서 죽은 애와 엄마를 아는 A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이들의 고통이 , 공포가 전해져 미칠 것 같았다. 현장 보존을 위해 지키고 있던 A가 다시 밀려오는 바닷물에 이들이 다시 뻘 속으로, 바닷물로 들어가지 않게 홀로 들어가 애와 엄마를 차례로 물 안 닿는 곳까지 미친 듯이 옮겼을 때는 거의 실신할 정도였다.


그것도 잠시, 하루 만에 부검이 떨어지면서 이들의 몸까지 갈라서 조각조각 병 속에 담는 일까지 해야 했다.

죽음의 공포와 죽은 시체의 부검, 거기다 햇살 뜨거운 데 속을 파헤쳐진 시체 2구를 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가’ 처음 느꼈던 A이다.


이 생각은 계속 A의 삶을 지배하는 트라우마가 되어 몸 아플 때면 태풍 치는 섬에 갇혀버리는 악몽으로 되살아났다. 이 고통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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