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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범‧허진, 두 작가의 ‘희망’ 이야기

시들지 않는 꽃’과 ‘뫼비우스적 노매드’, ‘고난과 상실’ 치유를 말하다

by 삼류 임효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활짝 열린 대면 허용으로 최근 가을맞이 지역축제가 한창인 가운데 미술계 전시회도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서양화가 권영범과 운림산방 후손 허진 작가가 27일과 28일 각각 홍익대 정문 와우 갤러리와 삼청동 베카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먼저 ‘어떤 여행’이란 주제로 25년간 작품 활동을 해 온 중견화가 권영범은 ‘시들지 않는 꽃, 해바라기’를 주제로 생동감 있는 꽃의 아름다운 이미지에서 탈피해 뜨거운 열기 속에 타들어가더라도 꿋꿋이 생명력을 이어가는 강한 생명력을 표현했다.



권 작가는 “사랑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과 우리들, 부모님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며 눈시울이 붉어진 인사말 뒤에는 사실 큰 수술을 한 자녀를 1년 넘게 간호하고 돌보면서 죽음과 사투를 벌였던 시련과 고통이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있다.



그는 태양을 향해 자란다는 해바라기가 고개를 떨구고, 시든 잎들 역시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아래로 향하고 있지만 결코 하늘과 땅이 준 생명의 기운을 포기하지 않고 ‘버팀’에서 오는 강인함으로 승화시켜 관람객에게 심미안을 선사한다.



아울러 따스함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장미 가족’ 시리즈 역시 볼만하다. 가시를 품고 때론 상처를 주더라도 서로 꼭 품고 같이 뭉쳐있는 모습에서 가족의 참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준다.



권영범 화가는 1996년 프랑스 랭스 국립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프랑스 에빼 르네 미술축제’ 삐에르 아만드 1등 상, 99년 프랑스 랭스 ‘살롱 오랑쥬’ 1등 상, 2008년 포스코 주최 ‘제9회 포항 국제 아트 페스티벌’ 대상을 차지했다. 2000년 귀국 후 경기도 김포 대곶면에서 작업하고 있으며 이번 전시회는 20일까지 진행된다.



‘뫼비우스적 노매드(유목민)’ 허진 작가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서사적 스토리의 반전을 꾀하는 독특한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이미 구축했다. 화선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로 연출되는 코뿔소와 얼룩말, 양 등 유목 동물들과 엉뚱하게 운동화와 비행기 등이 섞이면서 인간의 형체는 중첩되는 공간의 패턴으로 반복된다. 특히 사물들을 땅이 아닌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듯 배치하고 인간을 단색 처리하면서 동물과 겹치는 부분에서는 노랑으로 그렸다.



부유하는 사물들로 뇌리에 각인시켜 지켜보는 관객마저 현실 속 유목민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해 사별한 아내를 추모하는 뜻에서 처가 부모님과 가족들을 초대했다고 인사말을 전한 허진 작가는 울먹였다.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화가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것도 다 아내의 내조였다. 상실의 아픔이 깊어 아쉽게도 전시된 최근 작품은 몇 점 되지 않지만 19세기 문인화가 운림산방의 소치 허련의 후손으로, 남농 허건의 손자로 한국화의 맥과도 이어져 있어 미술계에서는 일찍부터 유명세를 떨쳤지만 교수생활에 더 충실한 편이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아내의 빈자리를 이겨내고 예술적 모티브로 승화시켜 향후 그림 작업에 더 집중해 진정한 예술가의 길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기를 응원했다.



깊은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다시 그들의 그림 작품으로 몰입했던 두 작가의 예술가의 숙명이 위로와 위안을 주는 가을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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