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30
'지하철 프로 출퇴근러'는 앞을 잘 보지 않는다. 환승이 가까운 플랫폼 정도는 이제 몸이 기억한다. 눈 감고도 대충은 찾아갈 수 있어야 진정한 프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도 그중 하나다. 가방이 열렸던가, 그날따라 프로답지 못하게 앞을 보고 말았다. 몇 걸음 앞에는 어느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계셨다. 어찌나 손을 꽉 잡으셨는지, 두 손이 꼭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셨었나', '사실은 사모님이 아니고 여자친구이신가'하는 식으로 혼자만의 일일 드라마를 써보며, 그분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의 주특기가 발동했다. 강렬한 손잡기를 봐서 그런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피어났다. 대부분의 동물은 앞 발이 있고, 사람은 두 손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 아닐까? 갑자기 머릿속 한편에서 캥거루와 코알라, 원숭이가 앞 발을 흔들며 나를 비웃는다. '훠이, 저리 가라. 저리 가.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라고 혼자만의 방어를 해본다.
적어도 사람은 육체적 필요만으로 손을 잡지 않는다. 어린 자녀가 넘어질까 봐 엄마가 손을 잡아주는 것과 다르게, 성인의 손잡기는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별로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체육대학교수님처럼 효율적 신체의 움직임만 따져 보자면, 오히려 손을 잡는 것이 걸음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손을 잡는 이유는 의외로 명확한 것 같다. '좋아하니까', 그냥 그뿐이다. 손을 맞잡으면 당연히 보조를 맞춰야 한다. 나 혼자 걸을 때보다 천천히 걷게 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좋아하면 손을 잡는 거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노부부의 마음으로 애정을 담고, 또 다른 날에는 보은의 마음을 담는다. 어린 시절 수없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을 부모님의 손을 잡는 것이 처음엔 생각보다 참 어려웠다. 용기가 생긴 나는 가끔 낯 모르는 이에게도 호의를 담아 손을 내밀어 본다. 여행지에서 흔들리는 배에 타려는 아주머니의 손을 잡아 드렸더니, 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내내 고마워하셨던 기억이 난다. 장풍에 눈빛에 손잡기까지. 마음을 전하려면 연습할 게 참 많구먼.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자, 내 손을 잡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