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33
자기소개할 일이 생겼다. 우리는 낯 모르는 이를 만나거나 낯선 조직에 진입할 때 종종 스스로에 대하여 설명할 것을 요구받곤 한다. 가만있어 보자. 그동안 내가 자기소개를 어떻게 했었더라. 가장 짧은 버전은 내 이름이었다. 이름을 말하고 '반갑습니다'라고 하면, 만사형통이었다. 혹시 분위기상 상세 버전이 필요하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소속된 기관, 직위 등을 추가로 덧붙이면 되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나를 소개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벼락을 맞은 듯 철학적 인간이 되었다. '그런 것들이 정말 나인가'하는 의구심이 든 것이다. 전국에 나랑 동명이인이 도대체 몇 명이냐고. 심지어 한자도 같고, 생년월일, 성별이 같은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나중에 퇴직하면, 그럼 나는 나의 일부를 상실하는 거냐고. 자문자답하게 됐다. 아니다 그건 내가 아니다. 궁극에는 나의 실체를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모래알만 한 특성이라도 찾아봐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간 나를 설명했던 말들이 사라졌을 때 많이 아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에 대한 키워드 찾기'가 시작됐다. 나에 대해 탐색했던 그동안의 글들을 토대로 교집합을 도출했다. 흡사 나라는 상품에 여러 개의 태그를 달아보는 놀이 같았다. 마음에 드는 문장은 보이면 통째로 추려보기도 했다. 각종 심리검사, 책을 보고 문답한 내용의 조합인데, 그사이 단점이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살살 간지럽긴 하지만, 장점을 더욱 살리며 살아보자는 취지로 이대로 완성하기로 한다.
먼저, 나는 '새로운 일을 할 때, 이번에는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하고 설레고, 성취하는 사람이다. 관련된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늘 배우는 사람,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호기심이 많은 사람, #하고 싶은 건 해보는 사람, #학구열, #깊이 있는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 #배움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 #자기계발, #성취하는 사람, #진취적인 탐구자, #전문가, #연구개발, #교수 성향, #교육자 적성.
그리고 나는 가끔은 사람의 마음을 읽기도 하는,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이다. 나는 기질적으로 예민한 편이고 대신 다른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거나 느끼는 편이다. 가끔은 몰라도 좋을 상대방의 생각까지 알게 되어 괴롭기도 했었다. 상대방은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는 그런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는 모른척해 주는 내공이 쌓인 것 같다. 앞으로 더 노력해 볼 부분이다. 관련 키워드는 '#심리, #상담가, #친절성, #사회적 공헌,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에 대해 이해하고,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백일동안 매일 글을 쓰는 백일백장에 참여하게 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글쓰기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매일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전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관련 키워드는 '#괴로움 없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 #인생의 나침반을 구하는 사람, #통찰력, #전략가, #분석가, #통찰, #영성, #지혜, #미래예측형 창조'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기타 키워드가 몇 가지 남았다. 바로 '#J이지만 가끔은 P같은 사람, #취향이 있는 사람 #드럼, 온천, 음악, 차, 멋진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나이가 드는 건지 큰 틀은 J인데, 가끔 P같은 행동을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취미나 취향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첫 번째 키워드에 속하는 것 같다. 호기심이 많아서 새로운 취미를 배우기도 하고, 계획과 다르게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가기도 하고 그런 게 아닐까. 현재까지는 나는 이런 사람인 것 같다. 오늘도 나, 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