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백일 백장] 100-34

처음으로 합평회에 다녀왔다. 사람들 앞에서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는 일이 즐겁고도 낯설었다. 내 글에 대한 쓴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나는 졸지에 새가슴이 돼버렸다. 싫은 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혹시라도 그런 마음이 티가 날까 봐, 속으로 '겸손'을 되뇌었다. 한편으로는 글에 대한 의견을 주고자 들였을 글 친구들의 수고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퇴고란 글을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는 일이다. 당나라의 시인 가도가 '僧推月下門’이란 시구를 지을 때 ‘推’를 ‘敲’로 바꿀지 고민하다가 한유의 조언을 받아들여 ‘敲’로 결정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백일 백장에 참여하면서, 사실 나는 의도적으로 퇴고를 외면했었다. 퇴고를 하다 보면 잘 쓰려는 마음이 커져서, 내가 글쓰기를 또다시 미루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그리고 한유와 같은 글 친구의 조언을 처음으로 반영해서 나는 퇴고를 했다. 소리 내어 글을 읽어 보고, 관련된 자료도 찾아서 읽어봤다. 글자 수도 세어 보면서 분량을 가늠했다. 특별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특정 직업군에 대한 표현도 조심스러워져서 삭제했다. 다시 읽어보니, 내가 봐도 처음보다는 참 좋다. 퇴고란 내 글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 글을 읽는 모든 이를 배려하는 일인 것 같다. 이제부터는 최소한의 배려는 잊지 않는 글을 써야겠다.




제목: 내 손을 잡아요.

'지하철 프로 출퇴근러'는 앞을 잘 보지 않는다. 가까운 환승 플랫폼 정도는 이제 몸이 기억한다고 할까. 눈을 감고도 대충은 찾아갈 수 있어야 진정한 프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나는 '프로 출퇴근러'답게 배낭은 반대로 돌려 매고, 가고자 하는 입구와 출구 사이를 최적의 동선으로 이동한다. 천천히 걷거나 돌아가는 건 내 사전에는 좀처럼 없는 일이다. 가방이 열렸던가. 아뿔싸, 그날따라 프로답지 못하게 그만 앞을 보고 말았다.

몇 걸음 앞에는 어느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계셨다. 파도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사람들 속에서, 두 사람은 마치 외딴섬 같았다. 뛰는 듯 걷는 나의 '프로 출퇴근러' 동지들과 다르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멈춰 있는 듯 걸었다. 어찌나 손을 꽉 잡으셨는지, 두 손이 꼭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셨었나', '사실은 사모님이 아니고 여자친구이신가'하는 식으로 혼자만의 일일 드라마를 써보며, 그분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의 주특기가 발동했다. 강렬한 손잡기를 봐서 그런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피어났다. 대부분의 동물은 앞발이 있고, 사람은 두 손이 있다. 앞발로 기어 다니는 동물과 달리, 사람은 손으로 걷지 않는다. 사람에게 걷기란 발의 고유한 영역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 아닐까? 갑자기 머릿속 한편에서 캥거루와 코알라, 원숭이가 앞발을 흔들며 나를 비웃는다. '훠이, 저리 가라. 저리 가.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라고 혼자만의 방어를 해본다.

물론 세상에는 좀 더 쓰임이 자유로운 앞발을 가진,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은 적어도 육체적 필요만으로 손을 잡지 않는다. 어린 자녀가 넘어질까 봐 엄마가 손을 잡아주는 것과 다르게, 성인의 손잡기는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별로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효율적 신체의 움직임만 따져 보자면, 오히려 손을 잡는 것이 걸음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손을 잡는 이유는 의외로 명확한 것 같다. 좋아하니까, 그냥 그뿐이다. 손을 맞잡으면 당연히 보조를 맞춰야 한다. 나 혼자 걸을 때보다 천천히 걷게 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좋아하면 손을 잡는 거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먼저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노부부의 마음으로 애정을 담고, 또 다른 날에는 보은의 마음을 담았다. 어린 시절 수없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을 부모님의 손을 잡는 것이 처음엔 생각보다 참 어려웠다. 몇 번의 성공으로 용기가 생긴 나는 가끔 낯 모르는 이에게도 호의를 담아 손을 내밀어 본다. 한 번은 여행지에서 흔들리는 배에 타려는 아주머니의 손을 잡아 드렸더니, 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내내 고마워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꽤 내성적인 사람이다. 살면서 느꼈던 고마움도 미안함도, 내 마음속에만 머물렀다가 사그러드는 날이 많았다. 답답해진 나는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나름의 필살기 수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풍을 연습했다. 잠들기 전 그날의 감정을 전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며 집중해서 장풍을 날려봤다. 다만, 텔레파시 코드가 맞아야 전달이 되는 한계가 있었다. 다음으로 눈빛을 준비했다. 만나서 차마 말은 못 해도 눈으로 열심히 말하면, 전달될 승률이 절반은 됐다. 이번에 준비한 비장의 필살기는 손잡기이다. 용기가 좀 더 필요하긴 하지만, 내 마음이 확실히 전달될 것 같아 조금은 설렌다. 장풍에 눈빛에 손잡기까지, 마음을 전하려면 연습할 게 참 많구먼.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자, 내 손을 잡아요'.


* 합평회 의견을 반영하여 퇴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