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39
나의 첫 상담은 무료 전화상담이었다. 학생 식당 앞 대자보 게시판의 포스터를 보고 신청했는데, 약간 '고민하는 청춘이여, 모두 내게 오라'같은 느낌이었다. 따뜻한 목소리의 상담사님과 나는 꽤 여러 번,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지금은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연애나 취업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이 아니었을까. 모든 회기가 끝난 뒤, 우리는 만나서 밥을 먹었다. 상담사님은 휠체어를 타고 계셨다. 이날 나는 겉모습과 '마음의 여여함'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먼 훗날 나도 저러한 여여함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상담은 느닷없이 하게 됐다. 옛날 사람인 우리 엄마는 29살이 넘으면 내가 시집을 못 갈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루가 멀다 않고 내게 결혼하라고 종용을 하셨다. 29살의 어느 저녁, 퇴근길에 나는 아무 상담실이나 무작정 찾아갔다.
"저 상담 좀 하려고 왔는데요."
"어떤, 상담?"
"저에 대해 알고 싶고요. 어떤 사람이 제게 잘 맞는 스타일인지도 궁금해요. 전체 회기랑 상담 단가 맞으면, 오늘 예약하려고 왔어요."
상담사님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 봤다고 하셨다. 나는 그날부터 열 번 정도에 걸쳐 각종 심리검사를 하고, 상담사님의 해석을 들었다. 나를 조금은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는 조언이셨다. 상담이 이후의 삶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혹시 내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그릇을 좀 더 크게 만들고 싶긴 하다. 그 당시 내 그릇이 작아서 못 알아차린 내용도 많았을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이후에도 삶과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교육과 자기 상담의 경계에 있는 과정들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동네 건강가정지원센터에 붙은 안내문으로 보고, 한국교류분석센터 상담심리치료연구소에서 주관하는 'TA010'과정을 들었다. 교류분석을 대화에 응용하는 게 실생활에 도움은 됐다. 그러나 전문적 용어가 많아,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조금 버거웠던 것 같다. 그 해 가을에는 건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미술치료사 과정을 수강했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사내 심리 상담 캠프에 참가했다. 둘 다 포장은 교육이었지만, 실은 나는 내 마음을 두고 스스로 상담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작년에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깨달음의 장이 상담이 맞나'하는 의구심도 품었는데, 내가 볼 때는 일종의 집단상담인 것 같다. 4박 5일 동안 법사님이 제2442기 도반들의 훌륭한 상담자가 되어주셨다. 서로의 꺼내놓음에서 깨닫게 되는 점도 많았다. 금년에는 작년에 이어 2년 차 커리어 상담도 받을 예정이다. 1년 차 상담은 내가 목표가 뚜렷하지 못해서, 사실 큰 소득이 없었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상담은 내담자가 얼마나 상담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상당히 달라지는 활동인 것 같다.
내담자로서 처음에는 상담을 통한 해결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내겐 너무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매직 키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은 상담사가 마법사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가끔은 상담사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최악의 결과가 기다릴 수도 있고, 때로는 내담자의 마음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일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 이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히 어쩔 수 있겠나. 혹여 텔레파시 코드가 잘 맞는 상담사와 내담자가 만나, 내담자의 삶이 요만큼이라도 살아볼 만해졌다고 하면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