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40
나는 주거복지사이다. 영등포와 강남 일대에서 2년간 주거복지 상담을 했다. 주로 소득이 낮고, 혼자서는 집을 구할 수 없는 분들이 센터를 찾아왔다. 우리는 원하는 집을 함께 구했고, 그러면 상담은 보통 끝이 났다. 그러나 늘 그렇지는 않았다.
"큰일 났어요. 와보세요."
"왜요?"
"아버님 한 분이 상담실에서 안 나가세요. 무서워요."
옆방 선생님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내 방에 찾아왔다. 그 방에 가보니, 아버님 한 분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계셨다. 옆에 둔 연장통에는 망치며, 톱이 그득했다. 집을 안 주면 여기서 죽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순간 세콤과 경찰 중 누구를 불러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아무도 선택하지 못했다. 그냥 아버님 손을 잡고, 살짝 안아드렸다. 거친 손이었다.
"아버님, 오늘 힘드시구나."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오늘 이혼하셨단다. 중년 남자의 눈망울이 떨렸다. 우리는 잠시 그냥 그대로 있었다.
"이제, 우리 그만 나갈까요? 아버님, 힘든 날 또 오셔도 돼요. 그때는 연장통은 집에 두고 오시고요. 약속입니다. 약속."
남자의 눈이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에서 무엇을 보고, 그런 용기가 났을까. 물론 내담자 중에는 집만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집도 없었다. 그리고 집만 구해서는 안될 것 같은 사람이 더 많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무작정 구청에 찾아가 무료 취업, 법률 서비스를 센터에도 순회 상담해 달라고 간청했다. 의료 서비스는 간호 관련 사회적 기업에 봉사를 요청했다. 그들은 처음엔 황당해 했지만, 이내 진심을 알아봤다.
거꾸로 아웃리치 상담도 했다. 나는 한부모 가정, 도박 중독 치유자, 자살 경험자, 고립 청년 등 다양한 현장에 찾아갔다. 특히 도박 중독으로 파산하신 분들을 상담하려니, 나는 걱정이 앞섰다. 연장통 아버님 같은 분들이 한 타스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았다. 기우였다. 사정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한결 표정이 밝았다. 센터 내담자들의 그늘과 대비되는 밝음이었다. 집도 없고 돈도 잃었기에 상황은 이쪽이 더 안 좋을 거 같은데, 나는 한동안 영문을 몰랐다.
몇 번의 아웃리치 상담이 끝날 갈 즈음, 나는 비로소 답을 찾게 됐다. 바로 지속적인 심리 상담이었다. 그들은 중독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꾸준히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다. 가족들도 자조모임에 참석했다. 나는 센터 내담자들에게 정작 필요한 걸 못해준 것 같아 미안했다. 집이 없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삶이 통째로 뒤흔들리는 일이다. 우리는 보금자리도 단단한 마음도 포기하고 살 수 없으며, 포기하도록 두어서도 안된다.
나는 왜 상담 심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혼자만의 브레인스토밍이 시작됐다. 종이를 한 장 준비하고 여과 없이 빠르게 써봤다. 이런, 너무 갈겨썼나 보다. 알아볼 수 없는 글자를 조심조심 해독해 본다. 우선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심리 서적을 읽었고, 흥미롭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사는 동안 때로는 내담자로 때로는 상담자로, 상담이 늘 내 곁에 있었다.
한때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안정성이 크게만 느껴졌었다. 이제는 내가 세상에 잘 쓰이는, 살아가는 가치를 만들어 보고 싶다. 나를 이해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지해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나의 상담 미시사를 살펴보니, 그동안 나는 교육분석과 자기분석을 해왔던 것 같다. 앞으로 내가 나를 잘 관찰하고 무의식적 갈등을 충분히 이해해서, 조금은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