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45
나는 생각이 많다. 생각의 바닥도 깊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가보지 않은 길의 끝이 보이기도 했다. 내 입장에서는 더 멀리 있는 걸 보고 알려주는데, 상대방이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속이 상하는 순간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때는 그랬다. 어떤 날은 생각이 많아서 힘이 들기도 했다. 생각의 가시에 찔려 마음에서 피가 흐르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쯤 했으면 마음 지혈은 프로급이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서툴기만 하다. 그렇게 생각은 나에게 애증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생각 버리기 연습'의 저자, 코이케 류노스케는 '생각병'의 이유를 우리의 뇌가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이 평범한 일상보다 자극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그 방향으로 생각을 몰고 간다는 것이다. 나는 컴퓨터 게임도 안 하는데, 나의 뇌는 혼자서 '걱정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내 마음이 연약하니까, 내가 상처받을까 봐 생각은 있는 힘껏 내 걱정을 했던 것 같다. 그냥 미움을 받도록 두자니, 내 생각이 너무 애처롭다. '생각아, 이제 내가 내 마음을 잘 지켜볼게, 그동안 애썼다. 고마웠다. 이제 쉬어도 된다'라고 나직이 속삭여 본다.
요즘 나는 생각의 스위치를 끄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알아차리기 연습'이다. 잡념의 바다를 한창 헤맬 때는 여행이든, 산책이든 공간의 이동이 효과가 있었다. 코이게 류노스케의 말처럼 새로운 자극이 일상을 이겼다. 또다시 생각이 많아지는 날,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볍게 길 떠나보리라. 낯선 길에서 이방인이 되어 걷다 보면, 왠지 모든 걸 영점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요가를 한다. 요가를 하면 두 가지 알아차림이 가능하다. 자세 중에 흔들리거나 넘어지면서, 내가 상념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나는 피식 웃고, 다시 돌아온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고 있었구나,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요가 후 누워서 쉴 때는 생각의 스위치가 완전히 내려가는 느낌이다. 흡사 '의식적인 잠'과 같다. 내가 요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거나,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이다. 명상에 능숙하면 좋을 텐데, 난 아직이다. 호흡만으로도 생각의 절제가 된다는 달인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궁여지책으로 가까운 이에게 생각을 털어놓아 보기도 했다. 반나절쯤 지나 과한 걱정이었음을 스스로 알아차렸다. 가까운 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아, 이건 안되겠구나. 이제 내게 남은 선택지는 '혼자만의 브레인스토밍'뿐이다. 종이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빠르게 적어 보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꽤 다르다. 쓰면서 현타가 오거나, 쓰고 나서 현타가 오거나. 보통은 둘 중 하나가 된다. 생각의 파도가 밀려올 땐 한 호흡 쉬고, 글로 써볼 것. 그래도 다행이다. 방법이 있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