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백일 백장] 100-46

살면서 몇 번의 죽음을 목격했다. 처음의 기억은 이제는 좀 흐릿해졌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전화를 받고 동생과 나는 난생처음으로 둘이서만 고속버스를 탔다. 우리는 터미널에 내려서 장례식장에 갔고, 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할아버지가 낯설었다. 꼭 마네킹 같았다. 포클레인이 첫 삽을 뜰 때가 되어서야 돌아가신 게 실감이 났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었고, 비슷한 기억으로 남았다.
대학생이 되자 달라졌다. 두 번의 매운맛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는 익사였다. 자동차를 타고 동작역 인근을 지날 때였다. 무심코 한강을 봤다. 반짝이는 윤슬 사이로 누군가 헤엄치고 있었다. 해상구조대였다. 디긋자 형태로 웅크린 한 남자를 견인하고 있었다. 남자의 입술이 파랬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두 번째는 좀 더 격렬했다. 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플랫폼에서 집에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저 멀리서 바람 소리가 났다. 한 남자가 에스컬레이터 꼭대기에서부터 전속력으로 뛰어내려 오고 있었다. 나와의 거리는 불과 이삼 미터. 그와 나의 머리칼이 정신없이 나부꼈다. 굉음과 함께 지하철 운전석이 보였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 쾅하는 소리, 지하철이 멈췄다. 그도 사라져 버렸다. 그날 밤 나는 양손을 허공에 대고 휘저으며, 꿈속에서 안된다고 누군가를 계속 만류했다고 한다. 며칠 후 그 자리에 방이 붙었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걸었다.


"또로로록, 또로로록"
"여보세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부인일까, 딸일까.
"저 목격한 사람인데요."
"아니죠. 뛰어든 거 아닌 거죠."
여자가 울먹였다.
"뛰어드셨어요. 죄송합니다."
"띠, 띠, 띠, 띠."
아무래도 보상금 문제가 걸려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기분이 묘하고 먹먹했다. 한동안 다른 역으로 멀리 돌아서 다녔다. 지금은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가장 최근의 죽음은 가까운 가족이었다. 아직 마음에 잔상이 남아있다. 길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면 형사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인은 의사 확인 후 다시 집으로 와서 생전에 쓰시던 침대에 한 시간여 누워계셨다. 처음도 아니었는데, 나는 누구나 죽으면 빈손이 된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집착을 조금은 내려놓게 됐다. 내 몸을 씻기고 입히고 바르는 것이 전보다는 덜 중요하게 느껴졌다. 꼭 필요한 물건인지, 물건을 새로 들일 때에도 신중해졌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런데 사람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렵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여전히 내 마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심지어 건담 조종석에 앉은 것처럼 가끔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기도 하다. 좋아한다는 명분으로 실은 의지하고 있는 걸 나도 안다. 그렇지만 나는 언젠가는 오롯이 나를 등불 삼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오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