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백일 백장] 100-48

나는 한때 사람들의 이마에 '바코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바코드로 사람들은 서로를 빠르게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은 서로 불필요하게 갈등할 필요가 없으며, 잘 맞는 사람들은 더 빠르게 관계가 진전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에너지 소모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이런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상을 할 정도로, 나는 인간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성격 탓도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되면,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당시에 나는 '관계도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잘못된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상대방이 나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면, 혹여 내가 무의식적으로라도 잘못한 일은 없는지 수시로 반추해 보곤 했다. 정말 머리가 빠질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순전히 그 사람의 상황 때문에 나를 아무런 이유 없이 미워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후 나는 큰 기대 없이 사람을 만났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은 나를 싫어하고, 일곱 명은 나에게 관심이 없으며, 한 사람 정도는 나를 좋아하기 마련이다'라는 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나는 나를 싫어하는 두 사람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대신 나를 좋아하는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 인간적인 매력이나 호감이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꽤 적극적으로 내가 먼저 대시를 하기도 했다.
인간관계에 있어, 지금의 나는 절과 같은 존재인 것 같다.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줄 것이나 내가 애써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껴서 떠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의 본질이 물처럼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가까웠던 사람도 멀어질 수 있고, 그 반대도 물론 가능하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 중 최소 20퍼센트, 최대 90퍼센트는 나를 미워할 수 있다.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오롯이 상대방의 자유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맷집을 키우는 것뿐이다.
내가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상대방을 싫어하게 되지 않도록 되도록 좋은 면으로 해석을 했던 것 같다. 한때라도 믿었던 사람이 나를 부인할 때, 마음이 아팠다. 나는 순진하고 바보 같은 나를 책망했다. 지금은 어제까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라도 내일은 더 이상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게 그 사람의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냥 관계가 물처럼 그렇게 흘러가 버린 것이다.
그래도 사람으로 마음이 아팠다면, 그건 내가 그 사람에게 진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나는 쉽게 사람을 들이지는 않았지만, 단 한 번도 사람에게 솔직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맞을수록 맷집은 좋아진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안 아픈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예전처럼 사람을 투명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비난한다고 해도, 은은하게 내 곁을 지켜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미움받을 용기로 내 마음을 충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