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58
나는 잠순이였다. 내가 최초로 사고를 쳤던 날도 모두 잠 때문이었다. 겨우 서너 살 된 아이가 사라졌으니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이웃들이 주변 골목을 샅샅이 뒤졌고, 경찰에도 신고를 했다고 하니. 비교적 대형사고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됐다. 바로 장독대. 우리 집은 옛날 스타일 주택이라 널찍한 발코니에 장독이 꽤 많았다. 나는 큼직한 장독에 기대어 낮잠을 자다가 발각된 모양이다. 눈이 부시게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엄마가 울면서 나를 안아주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나의 잠순이 행보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아무리 활동력이 좋다지만 침대에서 잠든 애가 책상 밑에서 산발을 하고 발견되는가 하면, 거실에서 잠든 나를 옮겨도 전혀 모르고 내 방에서 깨어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머리맡, 피아노 위 곳곳에 알람을 여러 개 놔두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늦은 밤 독서실에서 잠이 들어 진공청소기 소리에 놀라서 일어나길 반복하기도 하고, 독서실 총무님의 단골 퇴근 메이트가 되기도 했다. 잠결에 오늘 학교 쉰다고 잘못 말하고, 지각한 날도 있었으니. 음,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나는 사회인이 되면서 군기가 바짝 들었다. 내 사전에 더 이상 지각이란 없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사고는 방심한 틈에 찾아왔다. 신입사원 연수를 담당할 때였다. 내 역할은 보초병이었다. 연수 기간 중 별일이 없어야 하기에, 나는 낮에도 밤에도 보초를 섰다. 설악산 등반 인솔을 할 때는 젖 먹던 힘까지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린 시절처럼 나는 또 사라졌다. 이번에는 동료들이 연수원을 샅샅이 뒤졌다. 눈을 떠보니 나는 내 방 침대에 두 발은 바닥에 붙인 채로 'ㄱ' 자로 누워 있었다. 부서장님을 비롯한 모든 연수 담당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그분들이 퇴직하실 때까지 두고두고 이야기할 흑역사가 완성됐다.
그랬던 내가 불면증에 걸렸다. 처음에는 홀로 지방에 근무하게 되면서 잠자리가 바뀌니까 그렇다고 생각했다. 갖은 노력 끝에 불면증은 점차 사라졌지만, 어느덧 나는 새벽에 알람 없이도 일어나는 사람이 되었다. 전날 힘들었더라도 다음 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회사에 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머릿속에서 달리기를 했다. 마치 '미안하지만 나 잊은 거 아니지? 당신에게는 숙제가 있다고'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대학원 논문을 쓸 때는 잘 써지지 않는 파트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눈을 떴고, 사람으로 혼란스러운 시절에는 꿈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나는 눈은 감았되, 잠을 잤던 건 아니었지 싶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좀 달랐다. 그저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모처럼 찾아온 무념무상의 아침이 반가웠다. 생각해 보면 잠순이였던 내가 애써 잠을 쫓게 된 건 중학생 즈음,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는 다섯 시간을 자면 정말 대학에 불합격하는 줄 알았다. 고작 열다섯 살짜리가 자판기에서 블랙커피를 뽑아서 마시고 그랬으니. 대학생이 된 후에는 무엇인가를 잠과 맞바꾸는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엊그제까지도 세상에 잠자는 시간까지 내어주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었고, 또 갈구해 왔던 것 같다. 이제는 안다. 나는 잠 대신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