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61
오랫동안 나는 겁쟁이 같은 사랑을 했다. 사랑을 무서워했고, 기회만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고 너그럽게 이해하기로 하자.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양보나 배려를 했더라도, 내 사랑의 크기가 조금 더 컸더라도. 결과론적으로 사랑 앞에서 나는 늘 도망자 신세였으며,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주홍 글씨를 가슴에 새겼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사랑에 대한 실망이 소복이 쌓였다. 꽃이 피면 다시 나는 사람이 좋아져 사랑을 했지만, 그때마다 내게 사랑은 뒷모습으로 남았다.
처음 도망쳤던 때로부터 여러 날이 지났다. 몇 번의 질주를 통해 나는 나를 실망시켰던 상대방과 멀어지더라도, 종국에는 내가 아무 데도 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죄 없는 상대방을 이상화했으며, 혼자 속이 상하고 결국에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했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허상을 사랑하고, 실망하고, 떠나기를 반복했던 게 아닐까. 애초에 실망시켰던 건 그가 아니라 나였고, 내가 겁쟁이가 되면 모든 문제가 손쉽게 봉합됐다. 그렇게 사랑은 내게 하나의 숙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다. 오늘의 행복을 그 어떤 것도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도망치려는 습관을 꾸짖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인생은 그렇게 덮어버린다고 덮이는 게 아니라고, 오늘도 나에게 말해 본다. 그래도 마음이 내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걸 보면, 습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건가 보다. 혼을 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서 마음이 흐뭇해져야 할 텐데, 아직은 마음이 무겁다.
늦은 밤 안태희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조금은 마음을 다잡게 됐다. 안태희 작가님은 15년간 수많은 커플을 상담하며, 사랑하는데 너무도 외로운 커플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상대가 곁에 있지만 너무나 외로운 원인을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사랑'의 신화에서 찾아냈다. 바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외로움에서 구해 줄 구원자로 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정곡이 찔린 듯 뜨끔했다. 헤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상대가 때때로 이방인 같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나의 언어를 해석해 주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냥 아는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예전만큼 서운하지 않다. 원래 그렇게 흐르는 거라고 생각하니 붙잡고 싶지도, 밀쳐내고 싶지도 않아졌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아끼는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그게 잘 안된다. 놓아지지도 않고, 실망스러울 때면 마음이 괜스레 슬퍼진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그저 내 마음속에 묻어두었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생각이 들어 힘들다는 것을 알린다는 점이다. 언젠가 내 마음이 못 버티고 또 도망을 가지 않도록, 붙잡아 달라는 상대방에게 보내는 작은 신호가 생긴 셈이다. 그대여, 그대가 곁에 있더라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리고 나, 이렇게 사랑을 포기하긴 아직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