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70
나는 일요일 아침마다 산책을 한다. 처음 몇 번은 잊어버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어느덧 습관이 되었다. 보통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집에서 쉬는데, 오늘은 우산을 쓰고 걸었다. 그 시작은 만다라 차트였다. 건강 영역의 목표를 세우는데, 왠지 하루에 5천보는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요일별 걸음 수를 확인해 보니 일요일은 미동도 없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일요 산책'이 됐다. 그런데 사실 산책 다운 산책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나는 산책이라기보다는 경보를 했던 것 같다. 빠르게 뛰듯이 걸어서 걸음 수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더랬다.
오늘은 좀 다르게 걸어봤다. 내 심장의 리듬에 따라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저수지 둘레길을 걷다가 중간에 멈춰 잠시 쉬기도 했다. 벤치에 앉아 있는데, 어딘가 좀 이상했다. 늘 보던 풍경이 생경했다. 빠르게 걸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만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하늘도 저수지 물결도 각자 자기만의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울타리 아래에는 푸릇한 싹이 보였다. '봄을 알리는 수선화 새싹이 올라오고 있어요. 곧 예쁜 꽃으로 인사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작은 푯말이 어린잎을 지켜주고 있었다. 봄이 오면 이제 그 길은 그냥 길이 아니라, 수선화가 피어 나를 기다리는 길이 될 터였다.
어쩌면 지난날의 나는 산책조차 하나의 숙제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주어진 과제를 빨리빨리 처리해버리는 '해결 모드'로 걸었다. 그 결과 몇 천보를 걸었다는 기록이 나의 걸음을 증명해 줄 뿐 다른 것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오늘의 산책은 나에게 노란색 수선화를 기대하게 한다. 돌아오는 길에 다른 사람들의 산책을 관찰해 봤다. 걷고는 있지만 손에 든 핸드폰의 영상에 온 신경이 쏠린 젊은 남자, 엄청난 속도로 지난날의 나처럼 뛰는 듯 전투적으로 걷는 여자, 손을 맞잡고 느릿하게 걸어가는 커플 등. 걷는다고 해서 다 같은 걸음이 아니었다.
정신물리학자 마르크 비트만은 연구결과를 통해 특정 시간에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더 많은 자극을 지각할수록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주관적인 길이는 더 길어진다"라고 설명한다. 결국 지각하는 자극이 적을수록 인생은 더 빠르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반면 시간이 똑같이 빠르게 지나버린 듯하더라도, '지금 여기'에 온전히 몰두하는 순간은 깊은 체험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할 일이 많아서 분주한 순간도 몰입의 순간처럼 착각할 순 있지만, 사실 그건 기계적 해결에 불과하므로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산책을 가장한 나의 '경보'처럼 말이다.
한때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팁을 전수하는 자기 계발서가 유행했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책들을 탐독했고, 시간을 아끼고 저축하면 나중에 시간의 이자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그러나 '모모'에 나오는 호라 박사의 말처럼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들은 쌓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사라져 버린다. 오늘부터 나는 걸을 땐 걷기만 하고, 잘 때는 잠만 자고, 누가 나에게 말을 하면 귀 기울여 듣기만 해야겠다. 때때로 설레고, 일부러 천천히 살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