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 날씨 '괴로움'

[백일 백장] 100-88

오늘 나의 감정 날씨는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나로부터 비롯되기에, 누구를 탓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오늘은 좀 탓하고 싶다.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나타나,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엄포를 놓으시는 분. 나는 처음에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고 해도 그렇지.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사람이다, 정말. 그런데 이제 나는 그가 좀 무섭다. 그의 큰 그림을 엿보고 나니, 너무나 냉정한 국제정세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기축통화국의 지위로 너무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얄밉게 느껴졌다. 어쩌자고 나는 이런 약소국에서 태어난 걸까. 독립투사도 아닌데 오늘 난 왜 이렇게 서러운 건지 모르겠다.
그분의 한 마디에 끈끈했던 주식 조직원 사이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돈을 벌은 자와 잃은 자의 간극이 생겨난 것이다. 출근길에 네이버 카페 창을 열었다. 주식 단타 수익 인증 글이 넘쳐났다. 하루 사이에 5백만 원을 벌었다는 사람이 증거 화면을 살뜰히 붙여서, 자랑 중이다. 가치 투자고 나발이고, 나는 그냥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서로 오순도순 사이가 좋았던 조직원들도 관계가 예전 같지가 않다. 잠수를 탄 사람도 부지기수이고, 아예 조직에서 탈퇴한 사람도 간간이 보인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 돈을 벌었다고 내게 자랑을 했다. 나는 입으로는 축하했지만, 입맛이 썼다. 분명 아끼는 사람이 맞는데, 돈 앞에서는 질투가 앞섰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이후 자책과 자기 환멸의 사이클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는 왜 이렇게 인내심이 없을까, 감정이 앞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끝에는 결핍이 있었다. 결핍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오랫동안 돈을 천시했었다. 그 대신 명예를 추구했던 것 같다. 조선시대 몰락한 양반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로 온다면, 나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월급 명세를 들여다본 적이 없었고, 특별히 돈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오늘, 내일 쓸 돈이 부족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씀씀이가 크지 않아 그런지,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 생활고에 시달려 본 적은 없다. 그런데 돈이 돈을 버는 기쁨을 배우면서, 어느새 돈은 나에게 결핍의 아이콘이 됐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 내가 이토록 괴로웠던 이유는 빨간 넥타이를 한 아저씨 때문도,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한때 업신여겼던 돈에 연연하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던 것 같다.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지상 과제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미련이 남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온종일 괴로웠는데, 그 덕분에 내가 놓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