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90
변곡점은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내는 곡선 위의 점을 의미한다. 이 단어를 들으면 동그란 모양의 수학 그래프를 연상할 확률이 크다. 그러나 당신이 굴곡의 다른 의미를 알게 된다면, 변곡점은 수학 용어가 아닌 인생의 갈림길을 지칭하는 말로 다가올 것이다. 통상 굴곡은 휘어서 구부러진 모양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잘 되거나 잘 안되거나 하는 일이 번갈아 나타나는 변동 또한 인생의 굴곡이라고 부른다. 작년 가을, 나에게도 변곡점이 있었다. 삶이 달라지던 순간,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앞으로 내 인생에 변곡점이 아마 몇 차례 더 있겠지만, 가장 최근의 변곡점을 기점으로 중간 정산의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음의 영역, 변곡점 이후 잃어버린 것부터 생각해 본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사람이다. 나는 꽤 많은 사람을 잃었다. 기존에 알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연락하지 않게 됐다. 조금 더 엄밀하게 따져보면, 기존에도 그리 두텁지 않던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 얇아졌다. 나는 이제는 상대방의 선의를 조건 없이 추정하거나, 순박하게 사람을 믿지는 않을 것 같다. 다음으로는 일에 대한 관점이나 희망 사항이 대단히 달라졌다. 일을 등한시하지는 않지만, 전처럼 조건 없이 일 자체를 사랑하지는 않게 됐다. 왠지 더 잃어버린 게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양의 영역, 내가 새롭게 얻게 된 것은 무엇인가. 그 역시 사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운 사람과는 더욱 가까워졌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옛말이 실감 났다. 우리는 서로의 밑바닥을 맨눈으로 지켜보고, 전보다 깊이 이해하게 됐다. 나라는 사람은 원래도 친구가 그렇게 많은 타입은 아닌데, 변곡점 이후 소수 정예의 벗만 곁에 두게 됐다. 의도치 않게 인간관계의 진검승부를 경험하면서, 나는 피아의 구분이 확실해졌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느슨한 관계의 묘미도 배웠다. 신기하게도 빠져나간 만큼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겼다. 정말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전혀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을 알게 됐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주변의 사람이 대거 바뀌었다.
그 밖에도 나는 마음공부를 시작했으며, 글을 쓰게 됐다. 블로그와 브런치 채널도 생겼다. 지난 몇 달간 나는 온 우주의 기운을 빌려 마음 챙김을 했던 것 같다. 내 마음에는 하느님도 부처님도 모두 다녀가셨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오롯이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여전히 나라는 사람의 실체를 입증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특성, 장점과 단점,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일종의 탐구 보고서를 손에 쥔 기분이다. 변곡점이 없었더라면 몰랐거나, 시간이 많이 필요했을 깨달음들이 흡사 번개를 맞는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졌다. 경청할 것. 감사할 것.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부분은 겸허히 받아들일 것. 대화에 독을 쓰지 말 것. 실수했다면 얼마간이라도 인정할 것. 상대방의 감정은 내 잘못은 아니라는 것.
중간 정산의 대미는 인생의 나침반이 장식했다. 변곡점은 내가 나를 둘러싼 인과관계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기회가 됐다. 나는 진지하게 나를 관찰했으며,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았다. AI까지 동원됐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인생의 방향성이라는 게 생겼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다시 인생에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면 담대하게 응할 수 있도록, 나는 내 삶의 원칙을 하나씩 채워가는 중이다. 거센 풍랑에 나의 배가 속절없이 흔들릴 때면, 내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고 되도록 괴롭지 않은 쪽을 선택할 생각이다. 변곡점 이후 나는 비로소 나라는 등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그 등불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이상하다. 중간 정산 결과, 아무래도 흑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