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백장] 100-93
"요즘 출판계가 많이 어려워요. 문학잡지에 기부하고, 글을 싣고 그러죠. 결국 내 돈 내고 글을 싣는 거지. 돈 주고 지면을 사는 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글 좀 쓴다는 사람들 간에 파벌은 또 얼마나 센지."
"그러니까요."
문학잡지 한 권을 사이에 두고 남녀가 대화 중이다. 남자는 나이가 지긋했다. 그는 교양 있는 태도로 듣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선사했다. 인품을 추정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그가 대화를 이어갔다.
"사람들은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하면 뭔가 순수하고 순박할 거라고 생각을 하지.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글을 이념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노동 운동을 하든 뭘 하더라도 글을 일종의 자기 무기로 쓰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안에 자기 생각이 가득 차 있어서 다른 게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고."
여자는 '네, 그렇죠'라고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마 직접 글을 쓰는 사람이었거나, 일생을 글과 관련된 업에 종사했으리라. 아무튼, 그와 그녀는 '글 관계자'로 보였다.
많고, 많은 자리 중에 내가 그들 옆 좌석에 앉게 된 건 기막힌 우연이었다. 아니다. 순서를 정확히 하자면, 그들이 내 곁에 왔다. 그는 글 쓰는 사람들 전부를 싸잡아 비난한 것은 아니었다. 글이 돈벌이가 되고, 자신의 결핍을 방어할 무기가 되는 순간의 비애를 지적했을 뿐. 여하튼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결국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글로 소득'을 꿈꾸거나 발간 작가가 되려면, '팔리는 글, 먹히는 글을 써야 한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는다.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약간 서글픈 이야기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독자가 원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수요와 공급의 경제 논리를 직설적으로 풀어낸 것뿐이다. 세상 모든 재화가 경제 원리에 따라 수급되는데, 글만 예외일 수 있겠나. 돈이든, 명예든 글이 그 수단이 된다면 나는 노신사가 험담하는 글 쓰는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묻기도 전에 '결코 쉽지 않다'라고 내 마음이 먼저 답을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쉽고도 기쁘게도 나에게 글쓰기는 돈과 명예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 외려 나에게 글쓰기는 솔직한 자기 고백이자, 치유의 장에 가깝다. 글을 쓸 때면 나는 잠시 멈추고, 나를 알아차린다. 공교롭게도 '글 관계자들'의 대화를 듣는 동안 나는 내 글에 대한 감상평을 읽고 있었다. 상당히 장문이었다. 여느 댓글과 달리 진솔함이 느껴졌다. '글을 읽으면서 진심이 느껴지고 위로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그 순간을 정말 감사히 느꼈습니다.' 자기반성에 불과한 내 글이 위로가 되었다는 말에 그만 나는 기분이 묘해졌다. 목표가 생겼다. 나는 '진심이 통하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