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자세, 아픔을 기억하기
북유럽을 여행하는 여러 방법들 중 사람들이 추천하는 하나는 각 나라와 나라 사이를 페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나도 처음부터 페리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 나는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각 지역에서 할 수 있는 한 꼭 보트 투어를 할 정도로 배 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보트 투어는 타는 동안 발 아프게 걸어 다니지 않고도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는 여유를 준다. 그런데 멀리 이동하는 페리는 왠지 타기가 꺼려졌다. 그 이유인 즉 내가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은 바야흐로 2015년 여름,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나고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당시 나도, 우리 사회도 아직 큰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북유럽의 페리는 한국의 시스템보다 훨씬 더 철저한 검사를 바탕으로 안전한 시스템에서 운영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무서웠다. 비록 내가 세월호 침몰 사고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1995년 6월 가족끼리 자주 가던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면서부터 인 것 같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나기 20년 전, 1994년과 1995년에는 유독 큰 사고가 많았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부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까지. 피해자는 모두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중 삼풍백화점은 자주 놀러 가던 곳이었고, 우리 가족이 주말마다 외식을 하러 가던 곳이었다. 토요일이었던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여느 주말처럼 그곳에 저녁식사를 하러 가기 위해 옷을 입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주 5일 근무제가 실행되지 않았던 터라 아빠를 제외한 남은 가족들은 아빠의 퇴근을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TV를 보다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사고 소식이 보도되었다. 우리는 운이 좋게 그곳에서 변을 당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삼풍백화점을 자주 찾던 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이후에 한 동안 ‘부실공사’라는 단어가 유행어처럼 입에 오르내렸다.
어렸을 때부터 삼풍백화점 근처에 살던 한 지인은 몇 년 전, 자기는 가족들끼리 외식을 한 적이 거의 없다고 그랬다. 그 지인의 가족 중 하나가 어디를 가든 그곳이 무너질까 봐 걱정되어 오래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때는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며 넘어갔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때 근처에서 일어났던 사고의 여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을 것 같은 상처도 우리의 마음에 남아 계속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안전할 것만 같은 북유럽에서도 사회적 트라우마를 만들어낼 만한 일들이 있었다. 1976년 핀란드의 남 오스트로보트니아에서 발생한 탄약고 폭발사고를 시작으로 1988년 일마요끼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 2007년 뚜술라와 2008년 까우하요끼에서 발생한 두 번의 교내 총기사고, 그리고 2014년 땀뻬레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 등 불행하게도 핀란드 국민들은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한 충격적인 사건들을 종종 경험하게 되었다.
핀란드에서는 개인 정신건강 치료와 개입을 지역 내 보건소가 담당했던 것과 달리 충격이 큰 사건에 대해서는 사회보건부가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직접 관리한다. 사회보건부는 정신건강서비스의 효과적이고 원활한 제공을 위해 지방정부 간 협력과 공공부문의 자원 동원을 총지휘한다. 충격적인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서 기본적으로 사회적 지지, 심리경험 보고, 위기 상담, 장기 심리치료 등 다양한 유형의 개입이 이루어지고, 1차적인 치료가 끝난 후에는 개인들을 대상으로 사후 사례관리 서비스가 제공된다.
또한 구성원 다수가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경우 직장이나 공동체는 일정 기간 동안 심리전문가와 정신과 전문의를 고용하여 구성원들에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기타 심리적 문제의 발생을 예방한다. 실제로 2007년과 2008년 발생한 교내 총기 사고 이후 해당 학교는 전문 심리상담가와 정신과 전문의를 1년 동안 고용하였다. 이러한 고용에 필요한 비용은 해당 지방정부가 부담한다. (신영규, 서울시 복지재단 복지 이슈 9월호, 2015)
우리는 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잊으며 살아간다. 어쩌면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인용된 니체의 문구 “망각하는 이에게 복이 있나니”처럼 우리는 괴로운 일들을 망각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사건과 사고들을 기억했다면 이런 식으로 계속 비슷한 사회적 불행이 반복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문제들은 커다란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져서 기존의 문제들이 해결되기도 전에 자꾸만 잊힌다. 새로운 사회적 불행은 다르지만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현대 사회의 이 모든 문제들은 자연재해 보다도 인재에 가깝다. 그리고 그 핵심엔 원리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자리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아이 캔 스피크’를 보면 본인이 겪은 일을 숨기고 살면서 각종 민원으로 구청을 괴롭히는 할머니가 나온다. 할머니는 단순히 구청 직원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고 타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이 원리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에 있다면 문제 해결의 핵심 역시 하나로 귀결된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은 것.
일하면서 나 하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뉴스 챙겨보고 하기도 쉽지 않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회사가 너무 힘들어서 일하면서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고 집에 오면 자기에 바빴다. 그래서 왜 사람들이 사회문제에 점차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샌가 자기에게도 관련 있는 문제가 생기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아 결국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사회악을 초래한다. 유럽의 대표 지성으로 불렸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오늘날 악은 누군가의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할 때, 말없는 윤리적 시선을 외면하는 눈길과 무감각 속에서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악은 애국심이나 의무감을 지닌 첩보요원이 어느 평범한 시민의 삶을 단호하게 파괴할 때 존재할 수도 있다"라고 했다. 즉, 누군가의 고통에 대한 몰이해, 아니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무관심이야말로 악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악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에 대해서 사유하는 것은 사실 즐거운 일이라기보다는 좀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 상황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은 결국 문제를 키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계속될 때 사회는 점차 크고 작은 문제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런 사회에서 안전지대란 대체 어디에 존재할 수 있을까. 타자의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궁극적으로 안전지대를 없애버리는 데 일조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동시에 사회적 연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로 대립적으로 보이는 두 개의 성향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게 보이지만, 이 바탕에는 공동선이 존재할 때 자기의 삶도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켜질 수 있음이 깔려있는 듯하다. 누군가의 불만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각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그나마 가능하다. 사회적 연대가 공고히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이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중요하다. 모두가 서로의 의견을 듣고 공유하며 납득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다. 물론 여기도 극과 극은 존재한다. 하지만 극과 극이 만나 서로의 의견을 듣다 보면 그들도 사람이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하려 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때로는 길고 지루한 논의를 이어나간다.
가끔은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서 계속 언급하는 게 지겹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서 접하곤 한다. 세월호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많은 사회적 재난을 겪고 그것이 다 해결되기도 전에 그것을 잊곤 한다. 너무 많은 문제들이 계속 터지고, 오랜 싸움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안 그래도 자기 삶도 힘든데 이왕이면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재밌는 걸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일 거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개인의 삶에서도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곤 한다. 우리의 삶도 기억하고 반성하며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듯이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실수했던 어제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어제를 기억하고 어제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이다.”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불행한 사고에서 진정 치유될 수 있는 길은 그것을 기억하고 다른 미래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핀란드의 사례는 '핀란드의 트라우마 치료(신영규, 서울시 복지재단 복지 이슈 9월호, 2015)'를 참조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대한 부분은 '한나 아렌트의 말' 리뷰; '성실하게만 살아서는 안 된다’ (김기철, 매일 경제, 2017.01.30), ‘지금, 여기’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한기호, 2017. 6. 24)를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