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 시리즈, 필리용크 아줌마 이야기 속 핀란드 시수(Sisu) 정신
사람들이 무민은 다 만화나 동화인 줄 아는데, 사실 무민은 어른들이 읽을만한 꽤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로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내가 읽고 ‘이걸 과연 애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충격과 감동을 준 ‘필리용크 아줌마’ 이야기가 나온다.
필리용크 아줌마는 항상 멸망을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며 지낸다. 집에 가만히 있으려 해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누군가 와서 자기 집이 더럽다고 흉보진 않을까 걱정하느라 청소를 하고 또 한다. 집을 길게 비우려고 해도 집 걱정을 하느라 치우다 못 나간다. '멸망'에 대해서 생각한 이후로는 언제 멸망이 될까 걱정만 한다. 이 정도면 정말 거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삶을 짓누르는 불안에 그녀의 삶이 거의 잠식되다시피 했을 무렵, 그녀는 그녀가 늘 걱정했던 대로 멸망 같은 폭풍을 맞이하고, 폭풍은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집을 송두리째 날려버린다. 그러나 멸망의 두려움에 떨던 그녀는 그 순간 도리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며 웃는다.
때로는 우리 삶에서 걱정이 우리를 잡아먹으려 할 때가 종종 있다. 막상 닥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곤 하다. 중요한 일일수록 시작하기가 겁나고 과거의 실패가 눈에 어른거리며 열심히 해도 다시 또 실패하게 될까 봐 걱정된다. 그런데 그렇게 걱정만 하다 보면 시도도 하지 못할뿐더러, 옴짝달싹 못하며 결국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영화 속 여주인공은 ‘두려워지는 게 두렵다’는 말을 했더랬다. 필리용크 아줌마의 이야기는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몇 년 후는커녕 5분 후의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곧잘 불확실한 인생에 대해 필리용크 아줌마처럼 불안에 떨곤 한다.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있을까 떨기도 하고,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하다가 아직은 완벽한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돌다리도 두들겨본다는 게 계속 두드리기만 하다가 해보지도 않고 끝나기도 했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수백 번 고민을 하느라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미래의 일을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것은 인류가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었고, 그래서 두려움이란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근원적인 기억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끔 미래만을 걱정하고 생각하며 현재는 살지 못한다는 생각도 든다. 힘들겠지만 해보면 꼭 성공하지 않아도 나름의 배움이 있을 수 있는데 실패하고 내 마음이 다칠까 봐 겁이 나서 해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나는 게임을 잘 안 하는 편인데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있지 않아서 그리 끌리지 않기도 하지만, 지는 게 싫어서 시도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들 중에는 잘 못하다가도 계속 열심히 해서 잘하게 되는 경우를 보곤 한다. 따지고 보면 첫 술에 배부른 것은 없다. 자꾸자꾸 시도해보면서 능숙해지고 잘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때로는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적어도 생각하지 않고 눈을 질끈 감고 도전하는 과감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라는 작품에는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남자가 나온다. 그는 오케스트라에 속해있지만 주목을 별로 받지 못하는 존재인데 아름다운 오페라 가수를 짝사랑한다. 이 모노드라마에서 내내 그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고민하며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한다. 보고 있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아니, 그 시간에 그 방을 나와서 그 여자에게 가서 고백을 하라고, 이 답답한 인간아!' 하는 생각이 든다. '시라노 벨주락'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시라노'에서 '시라노' 역시 사촌 '록산느'를 사랑하면서도 자기 코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고 거절당할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죽기 직전에야 고백한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생각에 빠져서 겁먹느라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티베트 속담 중에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걱정을 하면 오히려 걱정이 생기기만 하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이상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비울 때,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똑같은 상상력을 가지고 불행해질 수 있는 가능성보다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할 때, 좀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끝난 일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끝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법이니까. 그런데 새로운 시작을 하는 마당에 무거운 짐을 지니고는 멀리 가기 힘들다. 과거의 실패를 복기하는 것은 좋고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되풀이할까 봐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면 시작하기가 힘들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그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지나간 일은 보내주는 게 필요하다. 빈자리가 생겨야 새로운 게 올 수 있다.
필리용크 아줌마의 이야기를 보면, 스스로를 가두고 괴롭히는 감옥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가로막는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으로부터 벗어나야 진정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어려움이 닥칠 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고 결국은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 용기, 인내와 같은 시수(Sisu)라는 핀란드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다시 불운이 닥쳐도 이보다 더한 일도 견딜 수 있는데 이까짓 것은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굳센 사람, 그것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의연하게 살아가는 행복한 나라 1위로 꼽힌 핀란드인들이란 생각이 든다.
끝까지 가봤을 때, 그 끝이 당장 자신이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 올리버 드 스미스는 실패와 성공에 대해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다시 일어난 사람이다.'와 같은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넘어지는 건 힘들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것은 더 힘들다. 하지만 넘어졌다 일어선 사람은 알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이것보다 더한 것도 견딜 수 있다고 핀란드의 시수 Sisu 정신처럼 자신을 다잡는다.
넘어졌다 일어서는 게 힘들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넘어져서 일어서지 못할까? 아기 때로 돌아가 걸음마를 배우던 때를 생각해보자.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는 약 3천 번을 넘어져야 걸음을 배운다고 한다. 만약 별다른 신체적 장애가 없는 데도 넘어지는 게 싫어서 포기했다면 아마도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걸음마를 연습하던 어린아이로 돌아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어야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칠전팔기로 일곱 번을 넘어지면 여덟 번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엉망이더라도 한 번 해본다'는 생각이 '할 수 없다'라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극단적으로는 '이것에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 ', '내 인생은 이것 좀 잘못한다고 망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이번에 잘 안 되었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 하지 않았나.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할 기회를 담은 새로운 1분, 한 시간, 그리고 내일이 있다. 이번에 안 되었다고 해서 다음에도 기회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음 기회에'라는 말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혹독한 겨울이 나무를 할퀴고 가도, 나무는 그 겨울의 끝에는 반드시 봄이 온다는 것을 알고 다시 꽃을 피운다. 두려움을 직시하고 맞설 때, 그 끝을 보고 나면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것은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이리라. 두렵겠지만 모 스포츠 로고처럼 "그냥 해라 Just do it."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잘 안되었을 때는 스스로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다독여주자.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다. 이것에 무너지지 말자. 당신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사람이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처럼,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사람이 '아직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괴로울 수 있지만 결국엔 마지막에 지난날의 어려움을 추억하며 웃는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을 잃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