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자랑인 북유럽 스릴러만의 차가운 매력
북유럽 사람들에게 북유럽에서 북유럽을 대표하는 장르가 뭐냐고 물으면 그들은 ‘스릴러’를 꼽곤 한다. 북유럽 스릴러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스웨덴과 덴마크 친구들에게 왜 북유럽은 스릴러를 잘 만드냐고 묻자 이들은 대체로 북유럽 사람들은 굉장히 심각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스릴러나 공포물 등을 생각하면 주로 더위를 가시게 하기 위해 더운 여름에 보는 게 떠오른다. 더운 나라에서 보는 건 이해가 되는데 왜 추운 나라에서 더 오싹하게 만드는 스릴러를 좋아하는 것일까?
2015년 가디언지에 실린 노르웨이에 산다는 Gwladys Forche의 소개에 따르면 북유럽의 스릴러를 심각하게 어둡고 음울하게 만드는 데에는 긴 겨울밤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북유럽은 굉장히 범죄율이 낮은 정말 안전한 나라들로 오히려 사람들은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기 위해 스릴러를 필요로 한다. 스릴러를 보며 느끼는 불안 초조한 상태가 오히려 그들의 안락함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를 즐겨보는 중년 주부들의 심리와 비슷하달까.
북유럽 스릴러는 ‘Nordic Noir 노르딕 누아르’ 혹은 ‘Scandinavia Noir스칸디나비아 누아르’로 불리며 북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를 끌며 인정받고 있다. 그 예로 ‘밀레니엄’ 시리즈는 52개국 9천만 부를 판매하며 1억 독자가 읽었다고 한다. 이는 북유럽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리고 읽힌 것이며 미국에서는 2초에 1부씩 팔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저자인 스타그 라르손은 본래 기자로 스웨덴의 각종 사회문제를 고발하였으며 자신을 닮은 주인공을 내세운 밀레니엄 시리즈를 10부작으로 기획하고 쓰다가 3부작 탈고를 마친 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 외에도 렛 미인, 쿠르드 발란더 시리즈, 스노우 맨,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등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것들이 여럿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세계에서 인기를 끌게 된 것일까? 뉴욕타임스에서는 북유럽 스릴러의 인기 비결에 대해서 기후 변화와 정치적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며 추천했다. ‘북유럽 이야기’의 저자 김민주 역시 스칸디나비아 스릴러는 다른 나라의 스릴러와 다르게 사회문제를 다루는 것이 많다고 한다. 그 예로 ‘밀레니엄’ 시리즈는 성폭력 문제와 부패한 기업, 사회적 위선 등을 보여주며, ‘아르네 달’의 ‘미스테리오소’는 신자유주의가 망쳐놓은 스웨덴 경제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외국인 거주문제를 다룬다. 또한 ‘일곱 번째 아이’는 덴마크 아동복지 정책의 문제점을 꼬집었고, ‘라그나르 요나손’의 ‘밤의 살인자’는 아름다운 경관의 시골마을과 그에 대비되는 닫힌 사회 속의 두려움, 노르웨이 국민작가인 ‘요 네스뵈’의 ‘레드 브레스트’는 네오 나치주의자를 다뤘다.
사회복지 천국으로 보이는 북유럽의 실상을 고발하는 북유럽의 스릴러는 그들 사회에서는 사회비판인 동시에 이를 보는 다른 사회에서는 북유럽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창이 되어준다.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사회를 파고들었을 때, 사실은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충격적이고 자극되는 게 있을까? 북유럽의 스릴러물은 지적으로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 단순한 스릴러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평소 스릴러를 즐겨보지 않는 나도 북유럽의 스릴러물은 사회적인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다 보니 다른 나라의 스릴러물보다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 봤던 '라우라 화이트가 사라진 밤'은 하루키의 초장기 작과 비슷하다는 평을 듣는 핀란드 작품으로 겨울밤에 잘 어울리는 어른을 위한 판타지 스릴러였다. 북유럽의 스릴러는 조용한 북유럽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그 신비감이 더 배가 되는 것 같다.
스릴러라는 문화적 장치를 통해 재미뿐만이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스릴러라는 장르가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에 가장 적합한 장르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전까지 스릴러는 끝나지 않는다.
스릴러가 유행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사회경제적인 수준이 높아야 한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요즘 스릴러 장르가 유행하고 있다. 기존의 대중문화가 현실로부터 대중들의 눈을 돌리는 역할을 해왔다면 스릴러는 거기서 제시하는 문제들을 통해 현실을 다시 한번 의심해보게끔 만들지 않나 싶다. 대중문화에서 스릴러라는 장르를 통해 한국 사회 안의 문제들을 환기시킬 수 있다면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각성시켜 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러니 지겹도록 길고 춥게 느껴지는 겨울밤에는 왠지 여름보다 겨울밤에 잘 어울리는 북유럽 스릴러를 보는 건 어떨까. 아마 긴 밤이 순식간에 삭제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