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보이는 북유럽 낮은 건물들의 작은 상점들이 유지되는 법
북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좋았던 것은 낮은 건물들 덕분에 하늘이 잘 보이는 것이었다. 유럽이 전반적으로 오래된 건물들로 이루어져 4,5층짜리 건물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도 대부분 이 높이를 유지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전통적으로 왕이 내려다보기 위해서 건물들의 높이를 그의 시선을 가리지 못하게 규제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높은 건물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서울에 있으면 고층 건물들 때문에 그늘이 져서 우리 집 앞의 목련은 올해 벚꽃이 다 피고 나서야 필 정도였다. 그리고 온통 높은 건물들로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 고즈넉한 동네를 좋아하는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경복궁과 북촌 일대이다. 대학교 다닐 때는 홍대 앞을 좋아해서 우리 학교 근처인 신촌보다 홍대 앞에서 더 자주 놀았다. 그렇지만 홍대나 북촌이나 인기 있는 동네들은 금방 땅값이 비싸져서 높은 건물과 온갖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들어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의 얼굴들에 나는 익숙했던 곳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된 느낌이 들어 현기증이 난다. 그리고 어김없이 원래 그곳에 터를 잡고 있었던 사람들은 높아진 임대료에 짐을 싸서 떠나야 한다. 소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인해 고즈넉하고 아름답던 동네가 사라지게 되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종종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대기업 프랜차이즈 상점들의 동네 상권 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빵집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고, 이것은 비단 한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 다양한 업종으로 진출하면서 콜택시, 미용실, 온갖 업종의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대기업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이 이렇게 다양한 업종에 진출하는 것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몇 해 전, 북유럽을 다녀왔던 해에 한 국제 콘퍼런스에서 북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그렇게 사회복지와 더불어 경제성장도 이룰 수 있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스웨덴 린셰핑 대학교의 정치학과 교수인 Lars Niklasson교수는 스웨덴의 비결은 ‘사회적 협동조합’에 있다고 답했다.
사민주의의 영향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적은 인력이 서로 도우며 살았던 탓인지 북유럽에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전통이 강하다. 핀란드 역시 그 사회 성장의 동력을 ‘협동조합’으로 꼽고 있다.
스웨덴 협동조합 운동의 실천가이자 사회 민주주의 이론가, 스웨덴 생협연합회 사무총장, 국제 협동조합 연맹(ICA) 중앙위원, 알마르 브란팅 사민당 정부 통신 교통부 장관을 지냈던 아네스 오르네는 그의 저서인 ‘스웨덴에서 협종조합을 배우다’에서 북유럽의 협동조합에 관해서 살펴보며 이를 스웨덴 중심으로 배경을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20세기 초만 해도 추운 날씨와 식량 생산의 어려움으로 인해 스웨덴 인구의 50%에 달하는 사람들이 북미 등으로 이민을 떠났다.
스웨덴 쇠데르턴 대학 정치학과 최연혁 교수에 의하면 금주운동, 절제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함께 소비자 운동이 스웨덴의 정치와 경제발전에 기여했다고 한다. 산업 발전과 더불어 1800년대 말 시작한 노동운동, 진보정치운동, 종교운동, 농민운동, 그리고 협동조합이 맞물려 일어났다.
1880년대 이후에는 노동운동과 여성 참정권 운동이 조직적으로 연계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이익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이는 노동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자본가와 시장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낙오된 사람 없이 모두 일정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자조적 목적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 상호 협력하는 협종조합 결성으로 이어졌다. 초기에는 노동운동에 다소 반감을 가지고 이용하기를 꺼려했던 사람들도 이들의 개방적 자유 회원제, 민주적 운영(회원 1표 주의), 구입비용 비례 보너스 제도, 낮은 자본금이자, 현금 구입(외상거래 금지), 정치 및 종교적 중립, 정보의 제공이라는 7가지 원칙이 적용되면서 정치색이 옅어지면서 직업과 사회적 활동영역 및 관심과 관계없이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참여하고 이용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경쟁업체인 유통업체의 대형화, 현대화, 고품질화에 밀려 고전하면서 이들 역시 대형마켓 형태로 변화하며 회원 공유제, 신사고적 정신, 인간과 자연의 관심, 사회적 영향력, 사회적 정직성의 5가지 원칙을 설정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상품 유통망인 패션, 영화, 전자상가, 서점 등과 공동의 회원 공유제를 통해서 회원서비스를 개선하며 다양한 상품 영역으로 확대하였다. 이들의 협동조합은 그 범위가 넓고 다양한데 심지어는 발전소인 에너지 협동조합까지 있을 정도이다.
1990년대 말 통계를 보면, 스웨덴 성인들의 어소시에이션 참여 숫자는 3,200만 명으로 한 사람 당 4~5개의 결사체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현재 북유럽 4개국에서 소비자 협동조합의 시장점유율은 20~40%에 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며 대기업의 횡포에도 꼼짝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에 대기업은 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까지 침범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구조인 ‘재벌’을 만들어내어 옥스퍼드 사전에 고유명사로 등재되었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전체에서 얼마나 차지할까?
얼마 전 ‘이야기 테라피’라는 책을 읽다가 호주 인디언인 ‘참사람’ 부족의 이야기를 봤다. 그들은 재미있는 놀이라며 ‘달리기’를 설명하는 선교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이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져야 합니다. 그런 것이 재미있나요? 놀이는 재미를 위해 하는 겁니다. 어째서 문명인들은 그런 경험을 하게 해놓고, 당신이 승리자라고 설득하게 하죠? 그런 관습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군요. 당신네 종족한테는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가요?”
문명인들을 돌연변이라는 의미의 ‘무탄트’라고 불렀던 참사람 부족의 말은 우리가 ‘경쟁’ 때문에 잊고 있던 ‘함께 하는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주인 고유의 개성이 있는 작은 가게들을 좋아한다. 내가 아끼는 작은 가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소중한 곳에는 그곳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었던 추억이 서려 있다. 그런데 그런 가게들이 사라지고 나면 마음이 몹시 쓸쓸해진다. 상가임대차 보호법이 개정되었다고 하니 아끼는 가게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