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운명은 행성과 같다

잠시 동안 스쳐 지나가는 삶에서 희박한 확률로 마주치는 당신이라는 행운

by moka

노르웨이에서의 셋째 날은 하루 종일 비가 심하게 내려서 오슬로는 유독 어둡게 기억된다. 그전에 날씨가 좋았던 곳들에서는 잊고 있었던, 북유럽에 우울증 환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8월 하순이라 이미 한 여름은 지난 것인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못해 서늘하고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덕분에 ‘절규’로 유명한 노르웨이 대표 화가 뭉크가 왜 그렇게 우울해하고 그의 그림들이 우울 그 자체였는지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가 우울했던 것은 그의 형제들의 죽음과 그가 겪었던 비극적 사랑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려서부터 뭉크는 일찍이 인간의 고통을 접하며 자랐다. 그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결핵으로, 누이는 폐병으로, 여동생은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착란으로 잃고 아버지와 남동생까지 잃음으로써 그는 평생 죽음으로 인한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의 연애사 또한 순탄치 않았는데 1885년, 자신을 후원하던 화가 프리츠 탈로의 형수인 보헤미안 기질의 밀리 탈로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자유분방한 그녀와 1889년 그가 26살이 될 때까지 연애를 하면서 그는 내내 끊임없는 의심과 질투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종국에는 급기야 여성 전체를 가증스럽게 여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고향 후배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녀를 두고 스트린드베리(스웨덴 출신의 소설가), 스타추(폴란드 출신의 작가) 역시 사랑에 빠지며 그녀는 결국 스타추와 결혼해버린다. 1899년, 34살의 뭉크는 상류층 툴라 라르센과 만나며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만 결혼을 요구하는 그녀와 달리 본인은 결혼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 결혼을 요구하던 그녀는 자살하겠다며 권총을 가지고 소동을 일으키고 그녀를 말리려다 총알이 그의 세 번째 손가락을 관통하며 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끝내고 여자를 더욱 경멸하게 되었다.


일생동안 상처뿐인 사랑으로 고통스러워하며 그는 인간의 고통을 가슴 깊이 느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예술이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이나 뜨개질하는 여인이 있는 실내 정경을 그려서는 안 된다. 숨을 쉬고 느끼며 아파하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존재를 그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덕분에 그의 작품들은 다소 현실과는 동떨어진 아름다운 그림만 그린 기존 다른 화가들에게서는 엿볼 수 없었던 특유의 음울하고도 고통에 서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보며 그가 예술로 승화시킨 인간의 고통에 공감한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고통이 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 같은 것에 괴로워했다는 것을 느끼며 위로받는다. 특히 '절규'의 경우, 다른 두 친구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지나쳐가고 혼자 남은 이만 자기만의 고통 속에 절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다른 감정보다도 '고통'의 경우 다른 이들이 자신의 심정을 몰라주는 게 얼마나 괴로운 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란 다른 감정보다도 남들에게서 이해를 받지 못하는 '고통'을 위로받기 적절한 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 나아가 우리 역시 이 괴로움을 우리의 삶에서 어떤 다른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르웨이, 특히 오슬로 여정을 돌아보면 핵심은 미술관 관람을 통한 뭉크의 재발견이었다. 오슬로의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몰랐던 뭉크의 작품들을 보고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그의 대표작인 '절규'도 좋았지만 ‘별이 빛나는 밤’, ‘키스’, ‘마돈나’ 등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왜 이걸 이제야 알았나 싶고, 소장하고 싶을 정도다. 특히, ‘별이 빛나는 밤’이나 연인들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정말 애틋함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는 뭉크가 남긴 ‘인간의 운명은 행성과도 같다’는 다음의 구절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운명은 행성과도 같다. 어둠 속에서 나타나 잠시 다른 별을 만나 잠깐 동안 빛나고 다시 어둠으로 사라지는 별과 같이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의 불꽃 속에서 반짝였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어진다. 오직 소수만이 그들이 둘 다 완전히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하나의 커다란 불꽃에서 만난다.'


문득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 우드가 나왔던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평범한 가정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매일매일 똑같이 주부로서의 단조로운 삶을 살던 여자는 우연히 그 마을을 방문한 사진가인 남자를 만나게 된다. 어찌 보면 다소 무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던 그녀의 삶은 그의 등장으로 한 줄기의 햇살이 드리운 것처럼 활기를 되찾는다. 그녀는 그를 통해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자신이 잊고 있던 삶에 눈뜬다.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들고, 남자는 그녀에게 같이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그녀는 비가 내리는 밖에서 그녀가 남편의 차에서 내리기만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보고도 마지막 순간에 문을 열고 내리지 못한다. 그녀는 그것을 남은 생에 내내 후회하고 그를 그리워한다. 그때를 계속 돌이켜보면서도 여자는 그녀에게는 그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자신의 가정과 아이들도 중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회고한다. 끝내 함께하지 못했지만 두 남녀는 그들의 사랑이 죽을 때까지 기억될 일생일대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랑하고도 다시 만나 함께 할 수 없었다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이란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깨닫게 된다.


어렸을 때는 디즈니 만화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평생을 함께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일인 줄 알았다. 내 주위에도 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 투성이었으니.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그것은 판타지라고 여겨질 정도로 쉽지 않다. '어린 왕자'에서 나온 말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서로 좋아한다고 해도 그 이후의 일 역시 쉽지 않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붙잡아 운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 또한 그의 저서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등에서 함께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일갈한다. 심지어는 '비포 선라이즈'에서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10년 후 '비포 선셋'에서 운명처럼 재회한 셀린과 제시가 '비포 미드나잇'에서도 함께하게 된 이후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몇 번의 불행한 사랑을 겪으면서 뭉크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되는 것은 소수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나.


뭉크가 남긴 구절을 보고 있노라면 칼 세이건이 그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남긴 아름다운 문구가 생각나게 한다.


'헤아릴 수 없이 넓은 공간과 셀 수 없이 긴 시간 속에서 지구라는 작은 행성과 찰나의 순간을 그대와 함께 보낼 수 있음은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칼 세이건의 말에 따라 계산해본 바에 따르면 이 넓은 우주에서 지구라는 행성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계산해보면 천양(억, 조, 경, 해, 시, 다음으로 높은 수)분의 일의 확률보다도 낮다(이것도 그나마 외계인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그러니 우리의 만남은 흔한 우연이 아니고, 얼마나 희박한 확률로 만나게 되는가 생각하면 인연 하나하나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중하게 느껴진다.



Starry+night.jpg 고흐의 영향을 받았다는 '별이 빛나는 밤'


IMG_0293.jpg 노르웨이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 본 뭉크 뮤지엄, 돌아다닐 떈 비오더니 떠나는 마지막 날 유난히도 맑았다.


IMG_0300.jpg 유리로 된 아름다운 뭉크 뮤지엄 건물의 모습, 뭉크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아도 한 번쯤 가볼만 하다



마지막 확률 계산은 http://kailieu.tistory.com/m/143 ( http://insightsalive.tistory.com/entry/스크랩-세상에-우연-따윈-없다-당신과-내가-만날-수-있는-확률 [Insights Alive])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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