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고 있는 사람들

겉은 노란, 북유럽의 한인 입양인들

by moka

북유럽에는 한인 입양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국경 없는 포장마차'라는 프로그램의 덴마크 코펜하겐 편에서 덴마크에 입양된 한인 입양인들이 나왔었다. 여기에 나온 것처럼 북유럽에는 많은 한인 입양인들이 북유럽 곳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2017년 12월 말, 뉴스에도 나왔던 노르웨이로 입양 갔다 한국에 부모를 찾으러 와서 찾지 못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던 분도 있다.


이들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첫 번째로 덴마크를 다녀와서 덴마크에 관해 찾아본 이후였다. 덴마크에서 덴마크인 친구와 식사를 하러 갔는데 누가 봐도 이방인 같아 보이는 나에게 웨이트리스는 덴마크어로 된 메뉴를 줬다. 내가 영어 메뉴가 있냐고 묻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나를 보고 외국인이냐고 물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이 미국의 뉴욕처럼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는 곳이라면 모를까 그 당시에는 황인종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아니라 백인이 아닌 사람을 찾는 게 힘든 수준이었다. 그런데 나보고 외국인이냐고 묻다니? 의아함이 가시지 않아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보다가 덴마크에 한인 입양인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덴마크를 방문하기 전, 덴마크에 산다는 한인 입양인을 알게 되었다. 나와 나이 때가 비슷한 그 사람도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해서 친어머니를 찾고 매년 방문한다고 했다. 그의 주위에는 그와 같은 한인 입양인이 또 있지만 그와 달리 그 사람은 한국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을뿐더러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했다.


비단 덴마크뿐만이 아니라, 북유럽에는 약 3만 명(스웨덴 1만 1천 명, 노르웨이와 덴마크 각각 9500명, 2017년 기준) 정도의 한인 입양인이 있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한인 입양인들이 북유럽으로 갔는데 한국인들은 그 사실을 거의 모른다.


주변의 몇몇 지인들이 한인 입양인들이 한국의 가족들을 찾는 잉카스라는 모임에서 활동을 했다. 그들의 말로는 입양을 가서 잘 적응을 하고 잘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따돌림을 당하는 등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도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입양인들은 현지에서 태어난 아동들과 다른 외모로 인해 차별을 당한 경향이 많다고 보고했다. 특히 이러한 괴롭힘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어려움은 입양인들이 좋은 학교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프레시안, 2008년 3월 25일)


다양한 문화권이 섞인 것도 아닌 북유럽에서 금발의 파란 눈을 한 백인들 사이 검은 머리 황인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 폐쇄적인 사회에서 한인 입양인들이 온몸으로 느꼈을 이질감이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스웨덴 한인 입양인 ‘파트릭 종대 룬드베리’가 자기의 한국 방문 이야기를 담은 ‘겉은 노란’에도 그가 성장하면서 겪은 이와 같은 많은 어려움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따돌림 등의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괴로워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그런 데다가 이명박 정부 때 해외입양인들은 ‘재외동포’ 자격을 상실하고 외국인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들은 ‘외국국적 동포’로 ‘재외동포’가 되길 바란다. 2008년 3월 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약칭 재외동포법) 제2조 2항에는 ‘재외동포’ 중 대한민국 국적자인 ‘재외국민’ 외 대한민국 국적자는 아니지만 재외동포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외국국적 동포’ 규정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를 ‘외국국적 동포’라고 한다. 같은 법의 시행령 제3조 2항에는 ‘부모의 일방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라고 추가 규정을 해 이른바 3세까지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1977년 4월 스웨덴에 입양된 다니엘 리(한국 이름 이남원)는 스웨덴에 입양될 당시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왔으며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한국 부모님을 찾았다고 한다. 다양한 경로로 스웨덴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한인 입양인들을 통해 대한민국을 보고 있으나 한국은 그들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려고 애쓰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본인의 의지대로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없다지만 해외로 입양 가는 한인 입양인들은 그들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에서 버려졌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웨덴 한인 입양인 수잔 브링크의 삶을 재현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한국 출신의 입양인들이 한국 밖에서 겪는 고된 삶을 그리고 있다. 물론 해외의 한인 입양인들이 모두 그녀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입양된 곳에서 잘 지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의로 선택한 것이 아닌 이상 그들에게 국적 회복의 기회는 열어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유럽에 대한 선망이나 관심뿐만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지만 명백히 존재하고 있는 그들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아닐까 싶다.



가끔은 나와 너무 다르게 생긴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던 여행, 한인 입양인들도 그런 걸 느꼈을까






*“한국은 우리를 전자부품처럼 수출했다”-재외동포 자격 잃은 스웨덴 한인 입양인들의 울분(시사저널, 2017년 12월 25일)에서 발췌

**”스웨덴에서 자란 입양인이 왜 한국을 그리워하죠?(프레시안, 박정준 서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2008년 3월 25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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