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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한생글 Sep 13. 2023

기차역에서


25살 여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서울에서의 첫 보금자리는 직장에서 30분 거리의 원룸이었다. 대학가 근처였기 때문에 거리는 활기찼고, 새벽이 되어도 밝던 그런 동네였다. 집을 떠나 혼자 생활을 시작한 나는 서울 한복판의 새로운 풍경과 돈을 번다는 사실에 들떠있었다. 한 번은 고향에 계시던 엄마가 1박 2일 서울 여행을 오셨다. 딸이 서울에 있으니 이렇게 여행도 온다며, 들떠하셨다.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늘 한 집에서 살았던 엄마였는데, 딸이 고향을 떠나 서울에 혼자 살고 있으니 자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러운 다양한 감정을 느끼셨으리라. 근무지 근처에 가서 이곳이 내가 일하는 곳이라고, 여기가 출근길이라고 소개도 시켜주었다. 엄마도 나도 마음 한쪽 구석이 가득 찬 만족감이 있었던 것 같다. 한 여름 속 더위에도 양산을 쓰고 땀을 흘리며,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동대문의 DDP도 가고, 남산공원도 가고, 광장시장도 다녀왔다.


대학가의 작은 원룸에 엄마랑 둘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가 생각난다. 작은 집이어도 어리기만 했을 딸이 혼자 계약을 해서 돈을 벌며 생활하는 곳에서 잠을 자는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엄마에겐 낯설고 새로웠을 1박 2일을 알차게 보내고, 일요일 저녁 엄마를 서울역까지 배웅해 드렸다.


오랜만에 딸을 만나 짧은 시간을 보내고는 기차를 타러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25살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느낌일까. 한 집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있던 엄마라는 존재였는데, 이제는 어쩌다 한번, 명절이나 생일, 서로의 일정을 조율해서 만나야 하니 말이다.


결혼을 해서 생활하다 보니 이제 온전히 엄마랑 둘이 보내는 시간을 내기는 더 힘들어졌다. 일상에서 챙길 것은 점점 더 많아지고, 하고 싶은 일 또한 점점 많아진다.


나는 왜 문득 기차역에서 엄마를 배웅하던 장면이 떠올랐을까. 둘이 보내던, 서울 생활이 한쪽 마음에서 만족스러웠던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는 7살이 어렸던 엄마와 내가 그리운가 보다. 그 시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소중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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