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함께 한 트럼프의 인생
2025년 1월 21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 취임 이후 국방비와 무역 적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으며 환율 문제를 비롯해 대한민국은 사상 초유의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의 위기 속에서 맞을 트럼프 2.0 시대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는 2024년 12월 8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재개관 기념식 행사에 앞서 엘리제궁에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지금 세상이 조금 미쳐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시리아 내전 등 복잡한 국제 정세를 두고 한 발언이겠지만, 21세기 문화 강국 대한민국에서 나온 계엄령까지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트럼프는 마크롱 대통령을 만날 때 상대의 손을 꽉 움쳐지고 비트는 포즈를 취하는 특유의 ‘팔씨름 악수 기 싸움’을 선보였다. 트럼프는 첫 재임 기간에도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9초간 팔씨름하듯 악수를 나누는 등 다른 나라 정상들을 상대로 비슷한 모습을 연출한 바 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종합 격투기 UFC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상대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악수로 다시 세계 정상들을 지배하고 있다며 환호했다. 이처럼 기존의 정치 문법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트럼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지만, 대한민국에는 트럼프를 상대할 수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프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아무도 그 해답을 알지 못한다. 스포츠 기자 생활 29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위대한 스포츠맨, 위험한 스트롱맨 도널드 트럼프'라는 책을 쓴 것도 미로에서 탈출구를 찾아가보려는 작은 시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을 3주 앞둔 2024년 10월 유세 도중 트럼프가 뜬금없이 춤을 추는 장면은 미국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어색한 동작에 대한 관심은 왜 40분이냐 같은 동작을 반복할까라는 의심으로 바뀌고, 결국 트럼프의 건강에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트럼프 춤추는 거 봤어?”라는 말을 직장과 가정, 동창회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들었고, ‘트럼프 댄스’ 이야기를 꺼낸 사람만이 아니라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은 트럼프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며, 어쩌면 이 댄스 하나로 미국 대선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추측이 이어졌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트럼프의 갑작스런 춤으로 인한 건강 논란은 트럼프에겐 분명 악재였지만, 위기를 딛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트럼프 댄스’는 놀랍게도 트럼프를 상징하는 동작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 발단은 스포츠였다. 트럼프를 지지해온 미식 축구 선수의 세리머니에서 시작해, UFC와 미국 국가대표 축구팀 공격수까지 트럼프 세리머니에 동참했다. 이런 스포츠 세리머니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문화적인 현상인 밈(meme)으로 확산하며 스포츠만이 아닌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이른바 핫(Hot)한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트럼프의 인생은 스포츠와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오랜 기간 다져온 스포츠의 경험은 그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평범하게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에서 그의 진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트럼프는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야구와 풋볼, 농구를 두루 경험했다. 미국의 대통령중엔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들이 꽤 존재했지만, 트럼프처럼 뛰어난 야구 실력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 고교 시절 야구부 주장으로 활약한 트럼프는 메이저구단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고 주장할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과장 섞인 표현이지만, 만일 트럼프가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었다면 미국의 역사가, 아니 세계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구세대의 스포츠 매니아들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USFL의 핵심 멤버이기도 했다.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로 군림하는 미국프로풋볼 NFL에 대항해, 1980년대 탄생한 미식축구리그가 바로 USFL이다. 트럼프는 USFL 산하 구단의 구단주 자격으로 NFL에 맞서는 새로운 리그를 꿈꾸는 강경론자였다. 수십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NFL에 도전한 트럼프는 USFL에서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다. 어쩌면 NFL과의 싸움에서 겪은 트럼프의 경험이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트럼프의 반골 기질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미식축구에서 실패한 뒤에도 트럼프는 그가 보유한 리조트 시설을 활용해 다양한 스포츠와 인연을 이어갔다. 마이크 타이슨 경기를 비롯해 주요 복싱 경기를 개최했으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사이클 대회 ‘뚜르 드 프랑스’를 본딴 ‘뚜르드 트럼프’라는 대회를 2년 동안 직접 운영한 적도 있었다. 골인 지점에서 관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다른 사이클 대회에는 달리, ‘뚜르 드 트럼프’의 골인 지점에는 억만장자이자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를 비판하는 문구를 든 사람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트럼프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 처음 집단적으로 표출된 무대가 바로 ‘뚜르 드 트럼프’ 대회였으니 트럼프는 스포츠 대회를 통해 수십 년 먼저 정치인의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트럼프가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는 바로 골프다. 트럼프는 수많은 골프장을 보유한 골프 재벌이며 골프를 통해 유명 인사들과 교류해 왔다. 트럼프의 골프 매너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그래도 언제나 골프를 같이 치고 싶은 사람에 꼽힐 정도로, 트럼프와 골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유명무실한 단체였던 종합격투기 단체 UFC는 트럼프의 지원 속에 지금 세계 격투기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다. 경기를 치를 장소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UFC는 트럼프 리조트를 활용해 겨우 대회를 열었는데, 대통령 당선 이후 가장 먼저 공식 석상에 등장한 곳이 UFC 경기장일 정도로 트럼프와 UFC는 깊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UFC뿐 아니라 프로레슬링과도 영혼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직접 프로레슬링 경기에 출전해 멋진 태클 실력을 보여준 적이 있으며, 직접 패자의 머리를 깎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이면서 강력한 모습을 남겼다. 트럼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프로레슬링계는 트럼프를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이름에 올렸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선 이후 프로레슬링 회장의 부인을 교육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처럼 스포츠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트럼프지만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와는 매우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전통적으로 가져 온 행사인 메이저리그 시구에 트럼프는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 전역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해 ‘3월의 광란’으로 불리는 대학 농구 조 추첨에도 역시 불참했다. 프로스포츠 우승팀을 초청해 백악관에서 만찬을 갖는 것은 미국의 전통이었지만, 농구와 풋볼, 야구 선수들의 거부와 트럼프의 반감이 겹치면서 원만하게 열리지 못했다. 트럼프 1기 재임 기간에 미국 프로농구 NBA 우승팀은 한번도 백악관을 찾지 않았다. 인종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면서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프로스포츠의 흑인 선수들은 경기전 미국 국가가 나올 때 무릎을 꿇고 항의를 했는데, 트럼프는 이들에게 국가관이 없는 자들이라며 경기장 밖으로 당장 쫒아내야 된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프로스포츠와 갈등을 빚었던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게 되면서 스포츠와 미국 사회에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앞으로 4년 동안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가 미국에서 펼쳐진다. 2026 북중미 월드컵과 2028 LA 올림픽이 연이어 펼쳐지는데, 월드컵과 올림픽은 대규모의 인적 교류를 피할 수 없다. 멕시코 이민자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강하게 나타내온 트럼프가 과연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공동 개최는 월드컵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트럼프에게 적대적인 도시 LA에서 진행되는 올림픽에서 트럼프가 보여줄 모습을 무엇일지 흥미롭다. 또한 푸틴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될 가능성이 높으며 러시아가 올림픽 무대에 복귀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 대회는 바로 LA 올림픽이 될 확률이 높은 가운데, LA 올림픽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스포츠 버전인 ‘미국 스포츠를 다시 위대하게’의 무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세 기단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라는 이미지 메이킹으로 상대와 차별화를 꾀한 트럼프는 이들 스포츠를 또 다른 이미지 메이킹의 장으로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2기 트럼프는 오로지 충성스런 관료로 채울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권위적인 감독을 연상케 한다. 과연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는 코치진으로 구성된 트럼프 호는 순항할 수 있을 것인가? 국내에서는 국방비 증가와 관세 부과 및 고환율로 인해 트럼프 2기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일부에서는 북미 대화 재개와 북미 수교,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전망하는 정치권 인사도 있을 정도로 트럼프에 대한 전망은 양극단을 달리고 있다. 트럼프는 2024 대통령 선거 기간에 과거 김정은에게 ‘같이 뉴욕 양키스의 야구 경기나 보러가자.’는 제안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 당선 이후 김정은과의 직접 만만을 추진한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왔다. 2017년 극단적인 언어로 서로를 비난한 뒤, 언제 그랬냐는 듯이 3번이나 만난 트럼프와 김정은은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 둘의 깜짝 만남이 성사된다면 같이 야구를 보는 장소는 뉴욕이 아니라 도쿄 또는 동아시아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야구 관람에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인 오타니가 얽혀 있는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이지만, 과거 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를 뛰어 넘는 역사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미국 대통령이자, 대표적인 스트롱맨이며 논란 많은 인물인 트럼프의 이야기를 스포츠에 관련된 여러 사례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2025년 1월부터 시작되는 4년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지막 임기이다. 마이클 조던의 라스트 댄스는 위대했다. 메시의 라스트 댄스 역시 감동적이었다. 트럼프가 펼칠 라스트 댄스는 어떤 모습일까? 트럼프는 전반전 이후 오랜 휴식을 가진 뒤, 이제 막 후반전에 들어간다. 90분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트럼프가 펼칠 드라마를 지켜보자. 요기 베라의 대표적인 명언처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