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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윤 Apr 24. 2022

메이저리그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예의 문화

스즈키 세이야와 박찬호의 경우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인 타자 스즈키 세이야가 시즌 초반 기대 이상의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국가대표 4번 타자 출신이긴 하지만 과거 마쓰이 히데키만큼의 괴물은 분명 아닌 데다 최근 일본인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부진했던 점을 감안하면 비록 초반이긴 하지만 스즈키 세이야의 모습은 분명 놀랍다. 한국 언론 역시 스즈키의 활약을 단신 정도로 보도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마니아 중 시카고 컵스의 팬이라면 스즈키의 타석을 유심히 지켜보겠지만 국내 팬들 대부분은 그가 홈런 치는 장면 정도를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즈키 세이야는 일본 시절부터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OPS형 선수였다. 마쓰이 히데키와 비교하면 홈런 숫자가 많이 부족하지만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OPS에서는 마쓰이 히데키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 그의 선구안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경기당 1개 꼴의 볼넷을 얻어내도 있는 것이다. 사실 오늘 글의 주제는 그의 볼넷으로부터 시작된다.


스즈키 세이야는 볼넷을 얻은 뒤 보통 선수들처럼 곧장 1루로 가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그는 포수와 심판의 뒤를 건너서 1루로 향한다.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일본 매체 풀카운트에 따르면 그는 '사람 앞을 가로질러 가는 것은 실례인 데다 연상의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것이 일본의 문화다' '人の前を横切るのは失礼なこと。特に年上の人に対しては。 それが日本の文化だ'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런 스스키의 행동을 두고 컵스 감독은 '굉장히 예의 바른 사람이다'라고 칭찬했으며 미국 언론에서도 스즈키의 이런 행동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일본 선수들은 굳이 심판 뒤로 가지 않고 곧바로 1루로 향한다. 스즈키의 행동이 특별한 것일 뿐 이것을 일본의 문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예의를 중시하는 아시아 야구의 이런 모습은 기존 메이저리그 야구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투수가 상대 타자를 맞췄을 때 한국이나 일본에선 미안함을 표시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반면 미국에선 빈볼을 제외한다면 타자에게 진루를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 투구 전 심판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두고 현지에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냥 심판에게 예의를 표시한 것인데, 메이지리그 관계자 가운데 일부는 잘 봐달라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나타낸 사람도 있다.  스즈키 세이야가 1루를 향할 때 심판 뒤로 가는 것과 박찬호가 심판에게 인사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존중 문화, 높임말이나 겸양어 사용이 일반화된 언어문화를 가진 아시아 문화가 수평적인 서양 문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한 예이기도 하다.


스즈키 세이야나 박찬호의 '예의'는 분명 존중받을 모습이지만 다른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이런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시아의 '수직 문화'와 메이저리그 대다수 선수들의 '수평적인' 문화는 뛰어나거나 열등한 적이 아니라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야구에선 '메이저리그'식 문화는 옳고 '한국 야구'식 문화는 틀리다는 인식이 일부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식'은 바람직하지 않고 '미국식'이 올바르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필자가 발간한 서적 '청춘, 여름, 꿈의 무대 고시엔-100년 역사의 고교야구로 본 일본의 빛과 그림자'에 보면 아시아와 미국의 문화 차이에 대한 일화가 여러 번 등장한다. 야구에선 불문율과 관련된 부분은 미국의 문화일 뿐인데, 한국 야구에선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아키야마는  예전 홈런을 친 뒤 홈베이스를 밟은 때 공중제비를 뛰는 동작을 선보였지만 어느 누구도 상대에 대한 도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벤치 클리어링은 일어날 수 없었다. 유난히 야구에 많은 불문율은 미국의 법체계와도 관련이 있다.


영국 법에 영향을 받은 미국은 불문법 중심이 법률체계를 갖고 있지만 프랑스, 독일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와 일본은 성문법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법 체계 자체가 다른 데다 문화까지 다른 아시아 야구가 미국 중심의 문화에서 파생된 이른바 '불문율'에 굳이 민감할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한국 야구는 미국이나 일본 야구의 장점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들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어떻게 한국 야구의 현실에 맞게 접목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야구뿐 아니라 교육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의 모든 면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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