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성윤 May 06. 2022

당선자-당선인 논란으로 생각해본 야구 용어들

야구는 놈 자(者) 없이는 불가능한 스포츠

다음 주에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고 나면 공식적으로 대통령 당선인이라는 애매한 호칭은 사라지게 된다. 여러 곳에서 지적한 것처럼 과거에는 대통령 당선자로 불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대통령 당선인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가 유난히 者 놈 자라는 단어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라는 절차는 후보자가 입후보를 한 뒤 유권자가 투표를 해서 당선자를 가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당선자가 맞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고, 공식적으로 대통령 당선인으로 표기됨으로 당선인 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양쪽 주장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한쪽은 이왕이면 者 놈 자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고, 다른 한쪽은  者 놈 자 만은 피하고 싶은 생각이 강할 것이다.


그런데 者의 어원은 상대를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놈'이라는 단어와 결합되면서 과도하게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가해자나 독재자 같은 의미가 좋지 않은 단어도 있지만 지도자나 소비자 같은 단어 역시 놈 자를 사용한다.


놈 자가 원래 보통의 뜻을 가지다 보니 사자성어에도 놈 자가 많이 사용된다.  양자택일(兩者擇一)이나 결자해지(結者解之)처럼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표현뿐 아니라 근묵자흑(近墨者黑)이나 거자필반(去者必返) 같이 비유를 할 때 쓰는 용어에도 모두 '놈 자'가 들어간다. 놈 자가 상대를 비하하는 의미였다면 이런 사자성어에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포츠 경기중에는 야구에 유독 놈 자가 들어간 표현이  많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batter는 타자, runner는 주자로 번역되었다. 이제는 '최고'라는 의미로 일상생활에서도 사용되는 '4번 타자'라는 단어는 너무나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아무리 놈 자가 비하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4번 타자' 대신 '4번 타인'이나 '타자주자' 말고 '타인 주인'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가 발간한 '청춘, 여름, 꿈의 무대 고시엔'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직구'가 실제 직선으로 가는 것이 아닌 데다 미국에서 Fastball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이유로 '속구'로 지칭하는 경우가 꽤 있다. 하지만 '직구'는 그 자체보다는 '변화구'의 상대 개념으로 야구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용어이다. 또한 시속 130km를 던지는 투수의 '직구'를 굳이 '속구'라고 부른다면 시속 140km의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와의 비교가 애매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확률이 1을 넘기면 모순이기 때문에 방어율을 굳이 평균자책점으로 바꾼 것 역시 골수 야구팬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다가서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런 논리라면 타율이라는 용어도 바꿔야 한다. 미국에서는 batting average를 쓰기 때문에 '타격 평균'으로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다음 주면 대통령 당선인이라는 말이 사라지게 된다. '놈 자'와 관련된 당선인-당선자 논란도 당연히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보기 드물게 '놈 자'를 사용하는 야구에 대한 관심은 유지했으면 좋겠다. 공교롭게도 한미일 모두 야구가 성행하는 몇 안 되는 국가이기에 '야구'가 국가 간 관계 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한일고교야구' 같은 대회가 만들어지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필자는 기자이자 저자인데 공교롭게 모두 '놈 자'가 들어간다.  '놈 자'가 들어가는 스포츠 '야구' 관계자이기도 하고, TV로 보는 시청자이기도 하다. '놈 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메이저리그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예의 문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