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뼛속까지 강원도 사람인가 보다. 스무 살 때부터 아니 정확히 만 19세부터 지금까지 서울에 살고 있지만 가족들과 대화할 때 네이티브 사투리를 쓰니 말이다. 때때로 내가 이중국적을 갖고 있고, 이중 언어를 쓴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고향에 가서 그곳 분들과 대화할 때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이걸 보면 조금은 서울 사람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아니다. 여전히 뼛속까지 강원도 사람이다. 메밀로 만든 음식은 다 좋아하니 말이다.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묵, 메밀차 등등. 특히 ‘메밀전.’ 메밀로 만든 음식은 강원도 음식이다. 요즘 세상에 향토 음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지만 음식에도 고향이 있다면 메밀전의 고향은 단연 강원도다.
내 고향은 강원도 평창이다. ‘평창’이라고 하면 근 현대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이야기가 꼭 나온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심지어 입사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자기소개서를 보고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메밀꽃이 핀 걸 무엇에 비유했지요?”라는 질문도 받아보았다. 정답은 ‘소금’이다. TV 드라마 대사에도 나온 적이 있다.
돌이키니 메밀 음식을 많이 보고 자랐다. 시장에 가면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메밀전을 파는 아주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의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부르스타(‘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맞는 단어인 거 아는데 그때 느낌을 살리려고 ‘부르스타’로 쓴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당시 부르스타라고 불렀다. 상표 이름으로 추측된다.)를 앞에 두었다.
불을 켠 부르스타 위에 무거운 무쇠 솥뚜껑을 뒤집어 놓는다. 솥뚜껑은 오목하게 파여 있다. 오목한 경사가 심하지는 않다. 여기에 기름을 두른다. 기름을 병째로 두르지 않고 기름이 담긴 종지에 빳빳한 솔붓을 넣는다. 기름 먹은 솔붓을 뒤집은 솥뚜껑 위에 동그랗게 돌리면서 기름을 바른다. 그 위에 국자로 뜬 메밀 반죽을 솥뚜껑 가장자리에 휘 두른다. 반죽이 기름에 지져지는 소리가 촤아- 나면서 반죽이 구멍 뚫린 도넛 모양이 된다. 먹음직스러운 소리라 군침이 넘어감과 동시에 메밀 반죽이 너무 묽게 느껴져서 망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도 올라온다. 아주머니는 나의 이런 마음을 무시라고 하듯 뚫린 구멍 위에 쪽파와 소금에 절여서 세로로 쭉 찢은 하얀 배추를 올린다. 다시 아주머니는 능숙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국자에 반죽을 조금만 담아서 쪽파와 배 추위에 반죽을 올린다. 수저에 반죽을 한 숟가락 떠서 구멍 난 부분을 메운다. 쪽파와 배추를 고정시키기 위한 작업이다.
몇 분인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아주머니는 뒤집개를 든다. 뒤집개를 가장자리에만 슬쩍 넣어 메밀전이 솥뚜껑에서 떨어지게 한다. 다시 뒤집개를 부침개 깊숙이 넣고 휙 뒤집는다. 뒷면도 익으면 옆에 둔 소쿠리에 올린다.
메밀전을 달라고 하면 칼로 세로로 두 번, 가로로 두 번 썰어준다. 금방 부친 메밀전은 환상의 맛이다. 담백하기에 조금 싱겁지만 초간장이 맛을 잡아준다. 은은하게 퍼지는 구수한 맛도 일품이다. 부드럽게 씹힘과 동시에 배추의 아삭함이 느껴져서 식감도 좋다. 익은 쪽파는 달큼해서 맛이 풍부하다. 따뜻한 메밀전은 입안에서 금세 녹아, 목으로 넘어간다. 자꾸자꾸 손이 간다.
평범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기가 막힌 메밀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지만 나만의 강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삭한 배추의 식감, 달큼한 쪽파의 맛 같은 강점은 나에게 무엇일까? 메밀전에 찍는 초간장은 조력자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내 곁에 있는 초간장 같은 사람은 누구일까?
내일은 메밀전을 부쳐 먹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