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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그린드레스 Apr 13. 2022

햄버거 냄새

먹는 것을 좋아한다. 워낙 좋아하다 보니 먹는 것과 관련된 행위도 다 즐긴다. 요리하는 것도, 요리책 읽는 것도, 맛집 탐방도 좋아한다. 먹는 거라면 다 좋아하지만 그래도 구분을 해본다. 먼저 육류는 꺼리는 편이다. 페스코 채식을 한 지 9년째다. 


다음으로 양식보다는 한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양식도 좋아하지만 워낙에 느끼한 음식을 잘 못 먹어서 금세 물린다. 스파게티보다는 비빔국수를 더 좋아하고, 빵보다는 밥이 더 좋다. 햄버거보다는 떡볶이를, 피자보다는 해물파전을 더 좋아한다. 


다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날, 지친 몸을 이끌며 걷는데 우산 속으로 들어오는 고소한 부침개 냄새를 맡고 걸음을 빨리 했던 일. 길에 내려온 땅거미를 보며 집에 돌아가는데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를 맡고 어쩐지 울컥했던 적. 엘리베이터에서 헬멧은 쓴 배달원이 쥔 치킨 냄새에 군침을 꿀꺽 넘기며 비닐봉지를 힐끔 보기 등등.


음식은 미각만큼 후각도 강렬하게 자극한다. 나에게 가장 잊히지 않는 음식 냄새가 있다. 햄버거 냄새다. 위에 양식보다는 한식을 좋아한다고 썼으면서도 나에게 있어서 냄새 부문에서 햄버거를 능가할 음식은 없다. 


나는 고향이 시골이다. 내가 어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나는 국민학교를 나왔다) 때까지만 해도 햄버거는 TV에서만 볼 수 있었다. 물론 서울에 친척이 많이 살아서 서울에 가서 먹어본 적은 많다. 서울에서 햄버거를 먹을 때마다 그 맛이 너무나 신기했다. 맛있다기보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시골 쥐처럼 패스트푸드 점에서 주문하는 방식이 생소해서 멍하게 있었던 것도 기억난다. 햄버거 그 특유의 냄새, 케첩 냄새와 조금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소스 냄새가 아주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피클 냄새와 구운 패티 냄새가 섞인 냄새였다. 



햄버거가 나에게

‘이거 먹으면 너도 서울 사람, 도시 사람이 되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과장을 보태자면 신분이 상승되는 느낌도 들었다. 



이 냄새를 가장 강렬했던 맡은 곳은 서울 고모네 집에 가는 길에서다. 당시 고모는 서울 반포에 살았다. 지금은 아웃렛이 된 백화점이 근처에 있었다. 그곳에 롯데리아로 기억되는 패스트푸드점이 있었다. 반포는 고속터미널 바로 옆이다. 멀미에 시달리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걷다 보면 정신이 들었다. 동시에 햄버거 냄새가 밀려왔다. 순간 이제 서울에 왔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묘한 승리감에 도취되곤 했다. 고모네 집에 가려면 항상 그곳을 지나갔는데 그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내일은 기념으로 햄버거나 먹을까? 아, 역시 양식은 당기지 않는다. 떡볶이를 먹어야겠다. 


남들보다, 세상의 기준에서 뒤처진다고 생각이 들 때 스스로에게 햄버거를 먹이자. 내 돈으로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되새기며 햄버거를 베어 물면 힘이 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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