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금 융자를 모두 갚은 삼십 대 초반 무렵, 대학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모아둔 돈도 없었다. 등록금은 내 형편에 비해 지나치게 비쌌다.
그럼에도 글은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문학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창작의 기초를 배우고, 몇몇 합평 동호회에도 참여했다. 학교 밖 인문학 공동체의 세미나에도 꾸준히 나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강의>, <새로운 정신분석 강의> 같은 책들을 읽었다.
일이 불안정했기에 가끔 쉬는 시기가 있으면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지만, 학교에 복귀하면 모든 게 멈췄다. 일할 때는 일만, 쉴 때는 공부와 글쓰기만 하는 불연속의 시간들. 인문학은 흐름이 중요한데, 그때그때 흥미로운 주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공부가 쌓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무렵 담임 업무까지 맡게 되면서 삶은 더욱 버거워졌다. 수업 준비, 행정 업무, 학생 상담, 각종 행사까지 매일이 반복되고, 하루가 끝나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삼십 대 중반이 되자 나와 함께 책을 읽던 이들이 작가가 되고, 학자가 되어 있었다. 나만 제자리 같았다. ‘이 나이까지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면, 이제 포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회의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지식이 삶을 바꾼다고 믿었기에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나 학자나 작가들이 자신이 쓴 글과 무관한 삶을 사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유명세로 타인을 착취하거나, 권위로 사람을 조종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물었다. ‘공부가 실천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왜 해야 할까?’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은근히 지식을 과시하려 했다. 공부는 나아갈 방향을 비추는 손전등이 되어야 하는데 지식을 명품 가방처럼 자랑하려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라도 아는 만큼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 그게 더 위대한 삶은 아닌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서른 중반, 나는 지쳐 있었다. 삶의 방향도 불확실해지고, 공부와 글쓰기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결혼을 생각했다. 방향을 잃은 삶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더 이상 혼자 버티기도 힘들었다.
데이팅 앱을 시작했다. 앱을 통해 남편을 만났다. 왜 그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궁금할 만큼, 무난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살아 자주 만났다. 한 달쯤 지나 연애를 시작했다.
만약 결혼을 못하게 된다면 강릉으로 내려가 학원이든 공부방이든 새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던 차여서 강릉에서의 한 달 살기를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2009년부터 혼자 자주 여행했던 강릉은 내게 익숙한 피난처였다. 매우 예민한 사람인 나에게 강릉 바다의 세찬 파도 소리는 세상의 소음을 잠재우는 약 같았다. 내가 강릉에서 한 달 사는 동안 장거리 연애를 하며 더 애틋한 사이가 되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모두 멈췄다. 공부도, 글쓰기와 독서도. 남편은 내가 독서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인지 몰랐다. 이상하게도 편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도 없었고, 내 글을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는 처음이었다. 그런 평온이 안정처럼 느껴졌다.
남편은 결혼 후에 전업주부로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은 달콤한 유혹처럼 들렸다. 오랫동안 해야 하는 일에 갇혀 살았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안도했다. 결국 결혼을 선택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처음엔 편했다. 남편은 주중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며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하루 대부분을 혼자 보냈다. 결혼 전 자취하던 시절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공허감이 찾아왔다.
하루가 지나도 아무 흔적이 남지 않는 삶. 청소하고, 요리하고, 빨래하기. 살림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며 평범한 주부를 흉내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살아 있었지만, 살아 있는 느낌이 없었다.
남편과의 갈등도 깊어졌다. 결혼 전에는 늘 나에게 맞춰주던 사람이, 결혼 후엔 막말도 쉽게 내뱉었다. 말다툼이 잦아질수록 이런 삶을 원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하나를 배웠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읽고 써야 했다.
*다음 화 예고*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결혼 이후 겪게 된 갈등 속에서 다시 읽고 쓰기로 나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13장. 아이 없는 삶, 갈등 속에서 다시 찾은 읽기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