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선생님은 관찰만 할게
핀란드에서 학교 이곳저곳을 다니며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어른들, 즉 학교에서는 선생님,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이면 비가 오든, 눈보라가 치든,
어떤 날씨와 상황에서도 밖에 나가서 놀아야 하는 핀란드의 교육 문화 속에서
초등학교 1학년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오는 핀란드 기후에 알맞게
아이들이 온몸을 방수복으로 덮는 우주복 같은 옷을 입는다.
이를테면 이런 모양이다.
매 시간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이 옷을 일반 옷 위에 덮어 입고 밖에 나간다.
신발을 신고, 모자를 쓰고, 장갑까지 끼면
초등학교 1학년은 거의 쉬는 시간이 끝날 즈음이 된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이라도 밖에서 놀면서 추운 겨울에 적응하기 위해
매 쉬는 시간마다 다시 이 옷들을 입고 벗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도와주는 모습을 난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오래 걸려도 스스로 하고,
징징대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그저 기다려줄 뿐이다.
조금 느릴지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어른들이 먼저 가서 도와줬을지 모른다.
요즘 학교의 모습은
“칼은 위험하니까 학교에 가져오지 마세요.”
“선생님 없을 때 바깥에 나가서 놀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 교실에서 노세요.”
“불을 쓰는 요리는 위험할 수 있으니 아주 간단한 샌드위치 만들기만 할게요.”
더 나아가
“이건 위험하니까 선생님이 해줄게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미리 다 준비해두었어요.”
칼이 위험하기 때문에 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불이 위험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불을 사용하여 조리할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
사실 아이들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어른이 그 사실을 믿어주고 할 수 있도록 자리와 기회를 마련해준다면 말이다.
요즘은 교실에서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의 마음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시작은 바로 '교실 속 직업놀이'이다.
이수진 선생님께서 쓰신 책을 보며 “아, 이거다!”하는 생각에 바로 교실에서 적용하고 있다.
우리 반에는 여러 가지 직업이 있다.
그리고 이 직업에는 권한이 있다.
이를테면 칠판 관리자 직업은 칠판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
칠판 어디에 게시물을 붙일 것인지, 칠판에 낙서를 해도 되는지, 시간표는 어떻게 알려줄 것인지 등등
이 모든 것은 칠판 관리자가 담당하는 몫이다. 선생님도 아이에게 허락을 구한다.
“선생님이 이걸 칠판에 붙이고 싶은데, 제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줄 수 있니?”
음악 DJ는 친구들에게 음악 신청을 받아서 적절한 시간에 음악을 틀어준다.
아침 시간에는 비교적 차분하고 조용한 음악으로,
나른한 오후에는 신나고 흥이 나는 음악으로.
아이들이 신청한 곡을 소개하며 교실 속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면,
그다음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소외된 아이가 있지는 않는지,
이 직업에 필요한 준비물이 더 있지는 않은지,
이 아이에게는 어떤 직업이 어울릴지.'
를 고민한다.
며칠 전 학습 자료실에서 빌려온 태블릿을 친구들이 사용하고
반납한 것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전원을 끄며 체크하는 준이를 보면서
“준아, 정말 꼼꼼하다! 학습 준비물을 대여해주는 렌트회사 직업이 딱이겠는걸?”
칭찬을 해주었다.
다음날 우리 반 직업신청표를 살펴보니
준이가 렌트 회사에 자기 이름을 적어놓고 갔다.
준이는 렌트 회사에 직원이 자기밖에 없다며
칠판 관리자에게 부탁해서 직원 모집 홍보 글을 칠판에 게시했다.
열렬한 홍보 끝에 함께 하고 싶다는 친구들 다섯 명과 함께
준이가 차린 렌트 회사는 우리 반에서 무척 흥행하고 있다.
우리반의 주인이 내가 아닌 아이들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다.
내가 쓰고 싶었던 솔직한 글 제목은
“선생님, 선생님은 빠져 주세요!”였다.
어른은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자.
아이에게 스스로 성장하고 배울 수 있는 자리를 주자.
실패할 수 있는 기회도 주자.
실패했다면 그 이유를 찾고 고민하며 고쳐나갈 수 있는 시간을 주자.
그럴 때,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니라
작은 성공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