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머소녀 v.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
남편은 미국 입국 후 7주 만에 소셜 시큐리티 카드를 발급받았는데, 내 카드는 어쩐 일인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소셜 카드가 없이는 현지 운전면허를 딸 수 없고, 은행계좌를 만들기도 어렵고, 취직하더라도 급여 이체가 안되는데... 물론 내 경우 아직 둘째 아이가 두 돌 밖에 되지 않아 당분간은 집에 데리고 있기로 마음먹고 있었으니 아주 급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국제면허 만료 전(일리노이주의 경우 90일 이내)에는 현지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싶었다.
다시는 방문하고 싶지 않았던 시카고 서버브의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에 또 가서 대기표를 받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 공무원 앞에 앉았다. 이민 비자와 소셜 카드 발급을 온라인으로 함께 신청했노라고 얘기했다. 공무원은 내 여권과 비자를 조회해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당신 소셜 번호가 이미 있는데?!?!”
무려 2003년에 발급되었다는 것이었다. 2003년, 그러니까 내가 대학생 시절 F-1 비자로 미국으로 교환학생 왔을 때, 나도 모르는 소셜 번호를 발급해주었던 건가? 그때는 교환학생 신분이었으니 미국에서 일할 생각도 없었고 소셜 카드번호를 아무 데도 쓸 일이 없어 모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알츠하이머라도 걸린 걸까?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번호가 이미 있다고 하니 그럼 이제 그 번호로 카드를 발급해달라고 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내 신상정보를 입력하던 공무원, 내 이민 비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는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이민 비자 만료됐어. 그린카드(영주권) 받아가지고 오기 전까지는 카드 발급 절대 못해줘.”
읭? 비자 만료?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내 귀를 의심했지만 바로 거기, 내 비자에 떡- 하니 찍혀 있었다.
IV expires on 30Nov2019
(2019년 11월 30일 자로 이민 비자 만료)
어이를 상실하고 나와 집에 와서 온라인으로 영주권 발급 상태를 확인해보니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떠 있고, 영주권 발급은 통상 120일 정도 소요된다고 되어 있었다. 모든 게 잘 풀린다는 전제 하에 여태까지 기다린 기간만큼 더 기다려야 겨우 영주권이 나올 테고, 그제야 그걸 들고 소셜 오피스에 또 가서 소셜 카드 발급 신청을 하고, 또 몇 주를 더 기다려야 카드가 발급될 텐데... 그 사이 국제면허는 이미 만료된 상태일 거고. 게다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끼어있는 기간이라 공무원들은 나 몰라라 휴가를 갈 테고.
더 멘붕이었던 건 그린카드가 없는데 비자는 만료된 그 상태 자체였다. 혹여나 급한 일이 생겨 귀국을 해야 된다면 미국 재입국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있지도 않을 최악의 상황들을 상상하며 패닉하고 있었다.
“동서. 세상이 무너지는 일도 아닌데 뭐. 좀 더 기다려봐.”
지혜로운 형님의 한 마디에 ‘이렇게 일이 꼬이는 데도 뭔가 뜻이 있으려나...’ 마음을 겨우 추스르며 지냈다. 한편, 세상만사에 일단 의문을 품고 보는 남편은 이민 비자가 만료되었다고 해서 소셜 카드 발급이 안 되는 게 말이나 되냐며 홈오피스에 쭈그려 앉아 리서치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와 미 이민국(USCIS) 웹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다음 규정을 찾아냈다.
미국 입국 도장이 찍힌 이민 비자는 만료 여부와 관계없이 유효한 임시 영주권으로 간주하며, 소셜 시큐리티 발급 목적상 유효한 ID로 인정한다.
와우! 남편 만세! 나는 법원에 출두하는 변호사의 심정으로 해당 규정들을 프린트하고 형광펜으로 색칠해서 변론을 준비했다. 뭘 잘 모르는 공무원이 또 헛소리를 하면 ‘이거 너네 웹사이트에 나와있는 규정인데 잘 모르나 보지? 아는 사람 좀 데려와줄래?’라며 한 방 먹여줘야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났다.
드디어 결전의 날. 단정한 옷차림과 비장한 표정으로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에 걸어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서 준비해 간 규정들을 다시 한번 쭉 읽으며 마지막 변론 준비를 마쳤다. 1시간 반쯤 후 내 번호를 부르길래 공무원 앞에 당당히 가 앉았다. 지난번과는 다른 공무원이었다. 또박또박 힘을 주어 소셜 카드 재발급받으러 왔다고 했다.
내 번호를 조회해보고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공무원이 말했다.
“이거 당신 정보 맞는지 확인 좀 해줘. 소셜 카드는 2주 안에 발급되어 주소지에서 받을 수 있을 거야.”
읭? 이건 또 뭐지? 나는 그간 대체 뭘 한 걸까... 덕분에 이민법과 소셜 시큐리티 내부 규정들까지 겁나게 열심히 공부해 버린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매니저 불러와”와 “이 구역 미친년은 나야”가 통하는지 경험해보려고 했는데 이번엔 틀렸나 보다.
징글징글한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야.
빨리 카드나 발급해줘.
카드 나오는 날 우리 소고기 먹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