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탈출을 향한 마흔 살 가장의 몸부림
스파게티를 마구 벽에다 던져 한 가닥이라도 붙기를 바라며 이력서를 여기저기 던져 넣던 중, 우리 부부는 미국에서의 구직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구직 기간을 당초 예상보다 훨씬 길게 잡아야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이력서를 스크리닝 한다고 해서 지원자에게 금방 예스다 노다 답을 주는 게 절대 아니었다. 지원하고 기다리고 거절 메일을 받는 과정을 무한 반복하면서도 어떻게든 오랜 기간을 버텨 내려면 총알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놔야 할 것 같았다. 날마다 줄어드는 잔고만 묵상하느니 생활비의 일부라도 현지에서 벌어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아주버님 댁 지하실 귀퉁이에 쭈그려 앉아 하루 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게 너무 우울하기도 했다.
“창고 정리면 어떻고 슈퍼 점원이면 어때, 피자 배달은 팁도 준다던데 그것도 괜찮겠다. 시계를 10년만 거꾸로 돌리기로 했잖아.”
결정적인 순간에 남편과 내가 짝짜꿍이 잘 맞아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 내려놓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마흔 살 가장의 태도가 참 신기하고도 고마웠다. 남편이 코스트코와 이케아의 창고 정리직에 지원을 하고 나니 곳곳에 붙어있는 “Now Hiring (구인 중)” 사인이 유난히 자주 눈에 띄었다. 미국이 호황이라 70대 할머니들도 취직을 한다고 들었는데 젊고 사지 멀쩡한 우리야 설마 뭐라도 할 수 있겠지 생각했다.
그러면서 존재감 전혀 없던 마트 점원들, 택배 직원들, 알바생들, 레스토랑 서버들이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떻게 저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밥이나 제대로 먹고사는 걸까.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비로소 주변 사람들의 애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나 보다.
그로부터 얼마 후 평일 대낮에 장 보러 가는 길, 남편이 말했다.
자기, 나 코스트코도 떨어졌어. 이케아도 안된 거 같아.
나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왜 그랬을까. 나이가 많아서였을까. 관련 경험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금방 관둘 것 같았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터뷰 기회라도 한번 주고 떨어뜨리지...
"뭐 어때, 괜찮아. 우리 보험도 없는데 무거운 거 들다 괜히 허리라도 나가면 어떡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별로 괜찮지 않았다. 젊고 건강하면 아무나, 아무 때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최저시급의 일들조차 진입장벽이 있는 거였다. 미국 생활 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어쩌지...?'
그러던 어느 날, 남편 핸드폰에 캘리포니아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드디어 서류전형 하나가 통과되어 화상 인터뷰가 잡힌 거였다. 더욱 간절해진 나의 기도대로 스파게티 한 가닥이 벽에 붙은 거였다. 남편의 전 직장 대표님의 추천을 받고 인디드(Indeed)를 통해 지원한 자리였다. 역시 미국도 낙하산 공법이 답인 건가. 인터뷰가 잡힌 날은 하필 우리 부부의 10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어쩐지 잘 될 거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날부터 남편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인터뷰 관련 서적들을 독파하며 준비에 매진했다. 지하실 바닥에 이 책 저 책 너저분하게 펴놓고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식사 시간에만 올라왔다. 나중에 가보니 워드 파일에 예상 질문/답 형식으로 어마어마한 스크립트를 만들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는 거였다. 혼신을 다하고 있는 게 보여 고맙고 짠했다.
인터뷰 전날, 남편은 그 스크립트를 나에게 한번 읽어봐 달라고 했다. 읽으면서 이런 부분은 이렇게 고치는 게 좋겠다, 이런 내용을 좀 더 추가했으면 좋겠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의견을 줬다. 스크립트 준비를 마친 남편은 인터뷰 연습을 같이 해달라고 했고, 나는 사악한 인터뷰어 코스프레를 했다.
당신의 성격적 결함은 뭐지?
당신이 직장에서 경험한 가장 큰 실패는?
직장 상사와 의견 충돌이 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만약 도덕적인 이슈라면?
남편은 자신을 셀링 해보라는 질문들보다는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를 난처해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모의 인터뷰를 해보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 기회를 꼭 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면서.
드디어 결전의 날. 아침부터 줌(Zoom)을 켜놓고 남편이랑 마지막으로 인터뷰 연습을 하고는 간단히 점심을 차려 먹었다. 깔끔한 네이비 슈트에 푸른색 넥타이를 한 젠틀맨. 대체 몇 달 만에 보는 모습이었나. 나도 주책이지, 그는 10년 전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보다 더 멋지고 든든해 보였다. 남편은 화상 인터뷰는 처음이라 긴장된다면서 내 증명사진을 카메라 옆에 붙여놨다. 웃고 있는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면서. 남편도 어지간히 주책이다.
오늘 분명 잘할 거라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 않았냐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감 있게 하라고, 남편을 꼭 안아주고는 콩닥거리는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 남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