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뻔해지면 안 되는 걸까...
화상 인터뷰를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 빨리 끝났네? 어땠어?”
“분위기 좋았어. 편안하게 잘한 거 같아.”
전날 밤 모의면접에서 사악한 인터뷰어가 했던 것 같은 까다로운 질문 같은 건 없었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경력을 차분히 읊으며 인터뷰를 주도했다고 했다. 인터뷰어는 당신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면서 다음 절차는 어떻게 진행될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캘리포니아까지 이주(relocate)하는 데 기간이 얼마나 필요할 것 같냐고 물었다고 했다. 겸손의 아이콘인 남편에게서 나온 요약 치고 이 정도면 정말 역대급이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오려나 보다, 가슴이 더욱 콩닥거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두 아들을 형님과 아주버님께 맡겨 놓고 10주년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러 나갔다. 오랜만에 원피스를 꺼내 입고 레드 립스틱을 바르고 힐도 신었다. 남편이 예약해 둔 분위기 좋은 와인바에서 우아하게 칼질을 하며 와인을 홀짝였다. 남편은 10주년인데 선물도 꽃도 미리 준비를 못해 어쩌냐며 미안해했다. 나는 그런 거 필요 없다고, 이렇게 둘이 데이트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함께 지내온 세월을 돌아보며 와인잔을 부딪히며 우린 행복감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우리가 함께 모험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행복해.
우리 가는 이 길이
뻔한 길이 아니라서 참 좋아.
그 후로 나는 그 회사 근처 동네들을 틈틈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이 30분 이내인 동네들 중 그레이트 스쿨(greatschools.org)과 니치(niche.com)를 기준으로 평점이 8점 이상이고 인종 분포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학교 몇 군데를 골랐다. 그리고 질로우(zillow.com)와 렌트닷컴(rent.com)에서 그 학교들 주변에 월세로 나와 있는 집들을 눈이 빠져라 검색하며 하트를 눌러 찜해 두었다. 명색이 캘리포니아인지라 시카고 서버브에 비해 많이 비싸고 면적은 좁았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내 마음은 이미 라구나비치 야자수 아래에 드러누워 탁 트인 태평양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석양의 황홀경에 잔뜩 취해 있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는 게 좀 이상했다.
“혹시 회사에서 이메일이나 전화 온 거 없어?”
“응... 희한하네.”
당신 같은 사람을 찾고 있다며 이사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묻기까지 했으면 거의 다 된 밥 아닌가...? 윗사람들이 휴가나 병가를 갔거나 회사에 급한 일이라도 생겼겠거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근심을 내리누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때마침 시카고 다운타운의 아쿠아리움, 박물관들이 동계 무료 행사를 시작한 덕분에 둘째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최대한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애를 썼다. 그나마도 아무 일정이 없는 날은 하루가 영겁 같았다.
2주가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자 슬슬 낙심이 되기 시작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인터뷰하자마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며 Thank-you Letter를 보냈어야 하는데 그날 괜히 저녁을 먹으러 나갔나. 그사이 더 쟁쟁한 후보가 나타난 걸까.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내가 김칫국부터 마신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로 잠도 안 오고 미칠 지경이었다.
일주일쯤 더 기다리다가 남편은 조심스레 회사 HR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고, 회사 내부 사정상 그 자리를 당분간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회신을 받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착수하면서 자리를 만들고 사람을 뽑으려다가 통째로 엎어진 모양이었다.
‘아이고 아버지...’
이미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었는데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몸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격려할 힘도, 기도할 힘도 없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력서 보낸 데서는 연락 오는 곳 하나 없지, 코스트코도 이케아도 떨어졌지, 심지어 있던 자리가 없어지기까지...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라던 자신감은 끝이 어딘지도 모르겠는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그리고 우리가 고국에 두고 온 많은 것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멀쩡한 직장, 아늑한 집, 행복한 동네와 학교, 따뜻한 이웃들, 보고픈 친구들, 사랑하는 가족들... 우리는 대체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이제 좀 뻔해지면 안 되는 걸까...
어두운 터널 속에서 헤매던 어느 날, 습관처럼 구인구직 사이트들을 열어놓고 멍하니 스크롤바를 내리고 있는데 갑자기 구인 포스팅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아주버님 댁 근처 작은 업체에서 직원을 뽑고 있는 거였다. 직무 소개를 살펴보니 경리, 비서, 관리에 때로는 영업까지 온갖 잡무를 처리하는 말단 직원을 뽑는 자리 같았다.
“자기, 나 여기 한번 써볼까 봐...”
한동안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아이들을 핑계로 전쟁터에서 물러나 있던 사십 살 아줌마가 이번엔 칼을 한번 빼 보기로 했다. 남편도 선뜻 그러라고 했다. 벼랑 끝에 서 있는데 밥만 안 굶으면 됐지 엄마의 손길이 무슨 사치람... 생각했다. 두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4년 전 마지막으로 업데이트했던 영문 이력서를 열어 고치고 다듬었다. 어차피 예전에 했던 일과 크게 상관도 없는 터라 이력서 자체가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에라 모르겠다, SEND 버튼을 냅다 눌러버렸다.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마음에 훅- 들어오지 못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