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3종 선물세트

영주권, 소셜 카드, 운전면허가 한 방에!

by 드리머소녀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에서의 어이없는 해프닝 다음날, 이민 신생아 부엌데기는 그날도 역시 대가족이 먹을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동서, 여기 동서네 메일이 와 있는데?”


미 이민국에서 보내온 네 개의 하얀 봉투였다. 각 봉투에는 우리 네 식구의 영문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말로만 듣던 그린카드(영주권)가 도착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린카드는 에메랄드 그린색이었다.


소셜 시큐리티 오피스에 다녀오느라 진을 짜낸 다음날 저녁에 그린카드가 도착하다니, 기막힌 타이밍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곤 우리 가족이 이걸 받기까지 함께 지나온 일들이 빛바랜 앨범 속 사진들처럼 하나, 하나씩 떠올랐다.


아기가 낮잠, 밤잠 자는 틈에 일하랴 비자 서류 준비하랴 진땀 빼던 시간들,

채혈하다가 애 잡을 뻔했던 신체검사,

어리둥절할 만큼 짧고 간단했던 오전 8시 미국 대사관 인터뷰,

제주 여행 떠나기 한 시간 전 택배로 도착한 비자,

큰아이 방학식 이틀 전에 팔려버린 우리 집,

남편의 퇴사와 큰아이의 퇴학,

육체노동의 끝을 본 해외 이사와 짐 정리,

사랑하는 이들과의 작별 인사,

미국 입국해서 좌충우돌 적응하던 시간들...


앞서 조바심내고 걱정하는 내 모습에서, 씨앗을 심어놓고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매일같이 흙을 파헤치는 어린아이가 보였다. 오래 기다린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미국 입국 후 두 달 만에 영주권을 받은 건 정말이지 빛의 속도였다. 뒤돌아보니 감사하게도 모든 절차가 막힘 없이 진행되었고, 우리 가족은 미국 땅에 빠른 속도로 옮겨심긴 거였다.


그다음 주에는 기다리던 소셜 시큐리티 카드도 발급받았다. 그걸 들고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 운전면허시험장)에 가서 운전면허 필기와 실기시험을 쳤다. DMV에 대한 끔찍한 후기들을 보고 하루 종일 걸릴 각오로 갔는데, 크리스마스 직전이어서 그랬는지 대기 줄도 길지 않았고 공무원들도 친절했다. 필기는 일리노이주 DMV 웹사이트에 올라온 모의시험과 비슷한 문제들이 대부분이었고, 실기는 우회전에서 머뭇거려 실점이 있었지만 한 번에 합격했다.


미국에 도착하고 두 달 동안 도무지 되는 일이 없다 싶었는데, 갑자기 크리스마스 선물세트처럼 줄줄이 해결되었던 것이다. 그 주말에 우리는 대가족을 다 데리고 나가 갈비를 먹었다. 신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자유케 하는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후련함이었다.


3종 선물세트 취득 기념턱 LA갈비 (Photo by dreamersonya)


기분도 좋겠다, 연말이겠다, 우리 가족은 그간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떨쳐내고 미국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를 신나게 보내기로 했다. 눈 덮인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불빛이 반짝거리고, 상점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시카고 서버브의 겨울은 동화 속 마을처럼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대가족이 함께 시카고 다운타운 크리스마스 마켓도 구경하러 가고,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형님의 친정 식구들과 함께 모여 만찬도 하고, 아이들은 어마어마한 선물들을 받았다. 학교 생활이 버거워 줄곧 울적해하던 큰아이는 미국의 크리스마스를 한번 경험하고는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며 행복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돈의 팔촌, 아니 그 이상까지 챙기는 이곳 크리스마스 문화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었으니까.


이런 바지도 입어봐야지, 미국이니까- (Photo by dreamersonya)



마냥 여행자로, 이방인으로 살다가 이제는 이곳에 정착하러 온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붕- 떠있던 몸과 마음도 서서히 자리를 찾아갔다. 평안, 행복, 기쁨, 감사... 이런 것들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해냈다. 그것들은 바로 내 안에, 가까이에 늘 있었고, 열심히 꺼내고 찾고 알아보는 이에게 더 많이, 더 자주 발견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막 정착하기 시작한 낯선 땅,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들 속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찾는 연습을 하겠노라 결심했다.


지금 여기,
아름다운 정착지 시카고에서,
먼저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 보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