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이민 신생아들의 막무가내 구직기
시카고에 도착해 현지 생활에 서서히 적응을 해 갈 무렵, 한국에서 선편으로 보낸 60여 개의 박스들이 도착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두꺼운 패딩과 내복, 방한용품, 아이들이 읽을 책과 장난감 몇 가지를 꺼내고 나머지 박스들은 뜯지도 않은 채 아주버님 댁 지하실 한쪽 벽면에 쌓아놓았다.
코너에 짱 박혀있던 탁자 하나를 끌어다 놓고 태평양 건너온 모니터와 키보드를 올려 좌식 홈오피스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박스들 사이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원숭이들처럼 뛰어다녔고, 남편은 틈만 나면 홈오피스에 쭈그려 앉아 인디드(indeed.com)와 링크드인(LinkedIn)을 열공하며 영문이력서를 쓰고 고쳤다. 박스들로 가득 찬 지하실 귀퉁이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남편의 뒷모습이 마치 택배회사 인턴 같았다.
우리는 동네 도서관에 회원 가입을 하고 이력서, 인터뷰, 구직 과정에 관한 신간을 있는 대로 빌려왔다. 책에서는 인공지능이 이력서 스크리닝을 담당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각 회사가 원하는 키워드를 이력서와 커버레터에 많이 담을수록 서류전형을 통과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어떤 책에서는 똑같은 이력서를 수십, 수백 장씩 뿌리는 행위를 ‘스파게티 한 접시를 벽에다 던져 몇 가닥이나 붙어 있는지 테스트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일단 인공지능의 스크리닝을 통과해야 이력서가 채용담당자의 손에 들어갈 텐데, 그 확률이 스파게티 면이 벽에 붙어있을 가능성만큼 희박하다는 뜻 같았다.
남편은 몇 날 며칠 걸려 쓰고 다듬은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나에게 한번 읽어봐 달라고 했다. 지하실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이제까지 쌓아온 경력과 살아온 인생을 A4용지 두어 장에 녹여 넣느라 얼마나 많은 고민과 자아성찰을 했을지가 눈에 선했다. 오늘은 어느 회사에 지원했냐며 은근히 압박하던 못난 내 모습이 미안했다. 남편의 이력서는 깐깐한 내 눈에도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여태까지 쌓은 경력이 구체적으로 수치화되어 중요도 순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본인이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했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모범답안 같은 그 이력서를 템플릿으로 삼아 각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에 맞춰 키워드를 추가하고 수정해서 지원하면 일이 잘 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남편은 연고가 있는 시카고와 중부(Midwest), 요즘 핫하다는 애틀란타와 텍사스 등지에서 올라오는 유사 직종이면 무조건 지원했다.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이 있었지만 미국에서 사회 경험은 처음이니, 신입으로만 뽑아줘도 감지덕지라는 마음으로. 영혼까지 갈아 넣은 그의 이력서를 지원하는 회사의 입맛에 맞게 성실히 고치고 다듬으면서.
그렇게 수십 개의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으면서 기다렸는데 두세 군데에서는 즉시 거절하는 이메일이 왔고, 나머지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차라리 아니면 아니라고 알려주면 좋으련만, 한참 동안 깜깜무소식이니 남편도, 나도 슬슬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주버님 댁에 얹혀 지내고 있으니 미국 생활비의 절반이라고들 하는 렌트비는 굳었지만 몇 달째 수입은 없는데 잔고는 계속 줄어들고, 날이 갈수록 마음은 가난해졌다. 지출만 있고 수입이 없는 상황, 언제쯤 다시 벌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는 현실이 사람을 얼마나 불안하고 궁색하게 만들던지. 외출할 일이 있으면 외식하는 게 아까워 바나나와 에너지 바로 대충 때우기도,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기도 했고, 아이들이 사달라고 조르는 장난감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아빠 취직 후’로 미뤘으며, 블랙프라이데이 폭탄 세일을 해도 전혀 신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시간만 보내다 한국에서 어렵게 벌어 모은 돈 다 쓰고 취직도 안되어 거지꼴로 다시 돌아가는 것 아닌가...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남편은 더 힘들 테고, 누구에게도 내 속을 털어놓을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온 세상이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팔로우하던 이민 선배의 블로그에 오랜만에 새 글이 올라왔다. 미국 와서 취업을 못해 밤잠 설치는 가장들에게 보내는 글이었다. 한국에서 기득권을 누리다 이민 온 사람들의 문제점을 콕 집으며, 한국 땅에 사는 동남아 사람들과 미국 땅에 이민 온 우리가 뭐가 그렇게 다르냐고, 방구석에 앉아 줄어드는 잔고만 쳐다보며 한숨 쉬지 말고, 쓸데 없는 자존심은 개나 주고 당장 뭐라도 시작하라는 내용이었다. 미국 사회 어디든 나를 불러주는 그곳이 바로 사회생활의 시작점이니 허송세월 하지 말고 창고 정리든, 우버 택시든, 피자 배달이든 뭐라도 당장 해보라는, 쓰라리지만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그 글을 읽으며 온통 우리 얘기 같아 정신이 번쩍 들고 소름이 돋았다. 남편에게도 읽어보라고 하고는 둘이 부엌에 앉아 구직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벽에다 스파게티는 계속 던지되, 하루 종일 방구석에 앉아서 던지지는 말자고. 구직 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아예 취직이 안될 수도 있는 거니 일단은 피자 배달을 하든 접시를 닦든 조금씩이라도 벌면서 긴 구직 기간을 버텨 보자고. 어차피 여기 사람들은 우리가 20대인지 40대인지 구별도 못하고 묻지도 않으니, 시계를 딱 10년만 거꾸로 돌리자고. 우리 이제 ‘서른 살’이니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면 된다고!
그리하여 마흔 살, 아니 서른 살의 남편은 야심 차게, 시카고 서버브 이케아와 코스트코의 창고 정리직과 자그마한 사업체의 사무직에 지원했다.
그리고 마흔 살, 아니 서른 살의 아내는 그때부터 남편의 아침식사를 거하게 챙겨주기 시작했다. 절대 기죽지 말라고. 힘내라고. 난 언제나 당신 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