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한 영알못 아들

혼밥 신세 외톨이 전학생의 돌파구

by 드리머소녀

본인의 영어 이름 스펠링도 헷갈려하던 초2 아들이 미국 초등학교에 처음으로 등교하던 날. 힘내라고, 씩씩하게 잘 다녀오라고, 엄마가 응원하고 있을 거라고, 파이팅을 외치며 아이를 힘껏 안아주었다. 아이를 보내 놓고는 하루 종일 마음이 뒤숭숭했고, 계속 시계를 쳐다보며 지금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회화 몇 마디 열심히 연습시켜 보내긴 했지만, 한국에서 파닉스 책만 겨우 떼고 온 아이가 수업시간에 뭘 알아듣기는 할까, 점심은 누구랑 먹을까, 화장실은 제대로 갈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걱정들.


3시 23분에 하교 벨이 울리는데 3시도 전부터 학교 앞에 도착해 아이를 기다렸다. 출입문을 열고 나오는 아이 표정이 아주 어둡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아이를 안아주며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하는 말은 거의 못 알아들어서 그냥 멍 때리고 앉아 있었어... 점심시간에 애들이 넛(견과류) 알러지가 있냐고 물어서 No라고 했는데 알러지 테이블에서 먹으라고 했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의 버디(전학생을 도와주라고 붙여주는 같은 반 친구)를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던 백인 여자아이는 친한 친구들이랑 점심을 먹으러 가고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두었던 것이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도 뉴질랜드에서 중학교에 처음 갔던 날, 하루 종일 아무 말 없이 혼자 있다가 집에 와서 소리도 안 내고 울었다는 얘기를 하며 아이를 토닥였다. 아이가 힘든 마음을 엄마에게 터놓을 수 있어서, 엄마가 조금이나마 먼저 겪어본 게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가방을 열어보니 하루 만에 숙제가 잔뜩 있었다. 영어 단어 스펠링도 외워야 하고, 독서록도 매일 하나씩 써야 하고, 수학 문제들은 왜 모두 서술형인지... 피곤해하는 아이를 붙들고 앉아 숙제를 시작했는데 머리가 아프다며 눕더니 잠시 후 먹은 걸 다 게워내는 것이었다. 얼마나 긴장하고 힘들었으면 몸이 그렇게까지 반응을 했을까.


“엄마, 나... 집(한국)에 가고 싶어...”


아이의 한 마디에 그동안 잘 붙들어 매 놓고 있던 내 마음이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눈물이 쏟아져 아이와 함께 울었다. 엄마도 그 마음 너무 잘 안다고, 공감해주고 기도하며 품어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구토 후 미열이 있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어 이튿날 아침 학교에 전화하고 하루 푹 쉬게 했다. 어차피 우리가 정착할 곳을 찾게 되면 학교도 옮길 가능성이 크니까, 여기는 잠깐 거쳐가는 영어 학원이라 생각하고 절대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미국 학교는 이런 곳이구나 경험만 해보자고, 아이에게도 얘기하고 스스로도 다짐했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집중 케어를 받으며 빠르게 회복이 되었고, 다음날 다시 씩씩하게 등교했다. 하교 후 만난 아이의 얼굴이 첫날보다 훨씬 밝았다. 크롬북으로 수학 테스트를 봤는데 반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 나왔다며 하이소프라노로 올라간 아이 목소리. 점심은 알러지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먹었지만 맛있었단다. 다음날 도시락에는 순두부에 군만두를 싸 달란다. 혼자 먹어도 상관없으니 입에 맞는 걸 먹어야겠단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강한 멘탈을 가진 것 같아 일단 한시름 놓았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하교하는 아이의 표정이 유난히 어두웠다.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물었더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거였다. 아이는 집으로 걸어가면서 점심시간 전 Recess(30분간 야외활동을 하는 쉬는 시간)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울먹울먹 했다.


가가볼(Gaga ball, 1:1 피구와 비슷한 운동 종목)이라는 게임을 했는데 아이들이 기회를 주지 않고 계속 자기 다리에만 공을 맞추면서 아웃시켰다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짜고 그러는 것 같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들 틈에 껴서 게임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계속 아웃시키니 결국은 혼자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또 속이 상했지만 마음을 애써 추스르고는 무심한 듯 말했다. 아이들이 네가 누군지 아직 몰라서 그런다고, 전학을 가면 처음에는 누구나 그런 일을 당하고 속이 상하게 마련이라고.


당최 가가볼이 뭐길래... (Photo by dreamersonya)


평소처럼 대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데, 형님이 아이에게 요즘 학교 생활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아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가가볼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형님이 갑자기 발끈하면서 같이 하던 아이들이 백인이었냐고 물으셨다. 동양인이라고 무시한 것 아니냐고, 인종차별 당한 것 아니냐고, 이런 일은 동서가 나서서 학교에 이메일을 쓰던지 선생님과 상담을 요청해서 처음부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십 대에 시카고로 이민 와 삼십여 년을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형님의 조언이었다.


인종차별에 왕따에 학교폭력에... 어른들이 가세하니 순식간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써지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입에 오르내리며 아이 걱정도 되었지만 아무래도 며칠은 더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종차별이나 왕따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아이들 사이의 텃세였을 수도 있고 어른들이 쓴 시나리오만큼 나쁜 상황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한편으론, 만약 아이가 이 상황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면 학교 생활에 새로운 돌파구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사내들의 세계는 모름지기 힘의 세계니,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가 실력을 한 번 보여줄 기회가 오면 아이들이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후 하교 길, 그날도 역시 가가볼을 했다면서 또 아이 목소리가 한없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이었다.


“엄마, 내가 말이야!!! 오늘 가가볼에서 강스파이크를 날렸는데 말이야!!!”


군대에서 축구하다 결정골을 넣은 이야기를 침 튀기며 하는 아재처럼, 얼굴이 벌게져서 흥미진진하게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아이 모습을 보며 엄마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면, 이런 경험들이 나를, 또 우리를, 더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