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기 연습
해외 이삿짐 9 큐빅을 시카고로 실어 보내고, 남은 물건들을 나눠주고 팔고 버리고 또 버리고, 마지막엔 이민가방 여덟 개를 챙겼다. 하루 24시간 중 10시간은 고강도의 막노동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홈리스가 되었다.
집을 비워주고 이민가방과 남은 짐들을 차에 욱여넣고 동네를 떠나는데 큰아이가 입을 삐죽거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동네 친구들과 매일같이 뛰놀던 놀이터, 큰아이 학교 가던 길, 둘째 아이 유모차 태워 산책하던 길,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가던 슈퍼, 자주 가던 분식집... 우리 삶의 터전이 우리 눈 앞에서 점점 추억 속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코 끝이 시큰했다.
그동안 당연한 듯 감사 없이 누려왔던 게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감, 안락함, 소속감, 익숙함, 내 나라, 내 언어, 여러 가지 특권들... 이제는 내려놓고 미지의 세계로, 아무도 우리를 알아주지도 알아보지도 않는 곳으로, 불안하고 미숙한 첫걸음을 떼는 거였다. 밑바닥부터 기어야 할 수도 있고 혹시 실패하면 우리가 여태 누렸던 것들을 영영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평안했다. 모든 절차가 단 한 번의 꼬임도 없이 물 흐르듯 진행된 걸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게다가 뒷모습도 듬직한 이 남자와 함께가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한 시간 남짓을 달려 서울 화곡동 막내 동생네 집에 도착했다. 출국 전 마지막 며칠 신세 지며 남은 일들을 처리하고 인사를 나누고 떠나는 일정이었다. 이민가방들과 꾸리다 만 짐들을 방 한 칸에 쑤셔 넣고 나니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차를 팔고, 주소지를 변경하고, 해외이주비 송금을 위해 계좌를 열고, 세무서에서 자금출처 확인도 받아두고, 학교에 제출할 서류들과 예방접종기록을 떼고, 당장 가서 쓸 돈을 환전하고, 챙겨갈 음식물, 필요한 물건들, 형님댁에 갖다 드릴 선물도 사러 다니고, 틈틈이 친척들, 친구들, 지인들과 식사도 하고... 끝까지 무슨 일이, 만나야 할 사람이 그렇게나 많던지. 이제 그만 미국 가서 짐 풀고 아무 생각 없이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무렵, 한국 땅에서의 마지막 밤이 왔다. 이민가방들 무게를 맞추느라 밤늦게까지 짐을 풀었다 쌌다 하고도 긴 여행 떠나는 기분으로 발 뻗고 푹 잤다.
드디어 아름다운 고향 땅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가는 날. 구름 한 점 없는 완벽한 가을날이었다. 인천대교를 건너가며 지내온 시간들을 돌아보니, 그간 헛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감사하고 기뻐하며.
함께 울고 웃으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걱정, 근심, 두려움이 왜 없었겠냐만, 이제까지 살아온 것처럼만 산다면 나라를 옮긴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지어졌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이민가방들을 챙겨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가방 5개는 23킬로 언저리로 맞추고 3개는 약간 넘어가는 정도였는데 감사하게도 추가 비용 없이 보낼 수 있었다. 마지막에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며 떠나고 싶지 않아서 마음과 행동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려고 자꾸 심호흡을 했다. 공항에는 친정부모님, 동생, 시부모님, 시할머니께서 나와주셨다. 다 같이 마지막 식사를 하고는 출국장으로 가는 길, 외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한국 나이로 아흔이신, 아직도 소녀 같으신 우리 할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우리 손녀딸... 이제 가는 거니... 할머니 죽기 전에 한 번은 다시 봤으면 좋겠구나...”
“가서 얼른 자리 잡고 다시 올 게요... 건강하게 지내다 만나요. 할머니 사랑해......”
배웅 나온 사랑하는 가족들을 한 명씩 포옹하며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인사를 했다. 모두의 눈에 이슬이 반짝였다.
그리고는 우리 네 식구, 출국장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