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국과 임시 영주권 취득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아시아나항공 시카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막바지 중노동으로 이미 온몸이 부어있는 상태였다. 식구들과 친구들이 보낸 카톡을 확인하고 하트와 안녕을 날리고는 핸드폰을 비행모드로 전환했다. 이제 진짜 가는 건가 보다 싶었다.
10개월 전 두 돌이 안된 둘째 아이 데리고 방콕으로 여행 가던 길, 아이가 여섯 시간 중 네 시간을 울어서 바다에 뛰어내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무려 14시간 비행이었다. 병원에 가서 유아용 수면제를 처방받으라는 사람도 있었고 콧물감기약을 조금 먹여서 재우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떠나기 직전 만났던 친구 하나가 멜라토닌을 먹여 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부작용 없이 깊이 잘 거라고 했다.
첫 번째 기내식을 먹고 나서 물 한 잔에 멜라토닌 한 알을 넣고 휘저어 아이에게 주고 남은 건 내가 마셨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눈을 비비적대던 아이는 칭얼거림 한번 없이 그대로 잠들었다. 나도 그대로 뻗었다. 아이는 무려 7시간을 내리 잤다. 멜라토닌 한 알의 기적이었다.
아이는 앉아서 자는 게 불편했는지 자꾸 좌석 밑으로 굴러 내려갔다. 결국은 내 발 밑과 앞 좌석 사이 비좁은 공간에 기내용 담요를 두 겹으로 깔고 눕혀서 재웠다. 그야말로 난민이 따로 없었다. 다음번에 이런 여행을 또 해야 한다면 핸드캐리 짐 안에 작은 돗자리를 하나 챙겨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했던 두 아이와의 비행에 감사하며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착륙했다. 입국장 안에는 미국 냄새가 났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가는 걸 보더니 Fast Track으로 가라고 해주어 짧은 줄에서 기다렸다. 간간히 어르신들이 통역을 부르는 모습도 보이고 세컨더리 룸으로 끌려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우리 차례가 되어 네 식구가 입국심사관 앞에 섰다. 지문과 사진을 찍고는 여권과 모니터를 한참 번갈아가며 보던 심사관이 남편에게 물었다.
“So, your brother lives in Chicago? Your sister? (형이 시카고에 살아요? 아니면 누나가?)”
“My brother (제 형이요).”
그리고는 우리 넷을 쓱 훑어보고는 도장을 쾅쾅 찍어주었다. 그린카드(영주권)는 6~8주 후 주소지에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미국에 여러 번 와봤지만 입국 심사대에서 질문을 딱 한 개만 받아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민 비자에 입국 도장이 찍혔으니 우린 ‘랜딩’을 한 거고 그와 동시에 임시 영주권자가 된 거였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입국심사를 끝내고 수하물 찾는 곳으로 갔다. 한참을 기다려 이민가방들을 하나씩 찾는데 카트에 가방 두 개가 겨우 올라갔다. 카트 다섯 개에다 유모차를 끌어야 할 판이었다. 쩔쩔 매고 있는데 남편이 말없이 사라지더니 어디선가 덩치 큰 백인 아저씨를 모시고 왔다. 포터 서비스란다.
‘와... 역시 여긴 남편의 나와바리인가? 남편 말 잘 들어야겠다...’
세관을 무사통과하고 입국장으로 나갔더니 아주버님과 형님, 조카가 보였다. 반갑게 인사하며 허그했다.
“형님, 저희 진짜 왔네요!”
“그러게, 진짜 왔네!”
둘이 한바탕 웃었다. 분명 웃고 있는데 두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미니밴과 SUV에 이민가방들을 차곡차곡 쌓아 넣고 형님댁으로 가는 길, 큰 아이와 세 살 많은 조카가 뒷좌석에서 조잘조잘 하하호호... 한 아이는 영어로, 한 아이는 한국말로 떠드는데 간간히 통역이 필요했다.
시카고 북쪽 서버브 널찍한 터에 자리 잡은 아주버님 댁에 도착했다. 4년 반 만에 와보는 거였다. 가방들을 거실 귀퉁이에 줄 세워놓고 형님이 끓여놓은 갈비탕을 한 사발씩 들이키고는 집안 곳곳의 사용법과 일정을 안내받았다. 게스트룸과 조카 방을 내주셔서 당분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의 시카고 한 지붕 두 가족살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