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몰린 마흔 살 아줌마의 드립
남편이 지원한 회사들에서는 두세 달이 지나서야 거절 메일이 우후죽순 오기 시작했고, 코스트코와 이케아 창고 정리직도 떨어졌고, 기적적으로 화상 인터뷰까지 갔던 자리는 공중분해되어 버렸다. ‘낙담(바라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몹시 상함)’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와 닿은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하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미국에 이민 가려한다고 주변 사람들한테 알렸을 때 깊이 생각해본 것 맞냐고, 뭐 해 먹고 살 거냐고, 미국 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은데 적지도 않은 나이에 애들 데리고 너무 고생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던 목소리들이 환청이 되어 귓가에 웅웅거렸다. “가서 정 안되면 접시라도 닦아보지요, 뭐...” 해맑게 웃으며 했던 그 소리가 우리가 처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철없고 순진했던 나는 대체 뭘 믿고,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걸까. 우리가 여기 잘 온 게 맞을까.
삼십여 년 전 부모님을 따라 이민 와 비슷한 상황을 미리 겪어본 우리 형님은 시카고 겨울엔 눈이 많이 오고 이사하기도 힘들 테니 겨우내 함께 지내자고, 큰 집이 하루 종일 텅텅 비어있는 것보다는 북적거리고 사람 사는 맛이 나서 괜찮다고 하셨지만, 시간이 갈수록 눈치가 보였다. 어떻게든 형님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자 부엌데기를 자처하며 대가족 식사 준비도, 뒷정리도, 내 집에선 잘 하지도 않던 냉장고와 팬트리(식료품 보관실) 정리도 열심히 해드렸지만 우리 네 식구는 자타공인 짐짝이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시크한 딸 하나와 강아지 한 마리 데리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지내던 집에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장어 같은 아들 두 놈이 우당탕탕 눈치 없이 뛰어다니지. 세 돌도 안된 둘째는 곳곳에 음식을 흘리고 장난감을 떨어뜨려 강아지의 건강을 위협하지. 아이가 갖고 놀던 플레이도우 덩어리, 크레용, 사인펜 뚜껑 같은 것들이 강아지 똥 속에서 발견되기도 하지. 급기야 어느 날은 화장실 휴지통에 버린 아이 기저귀가 갈기갈기 찢기고 갈려 다이닝룸 카페트와 하나가 되어있지... 형님네 세 식구에게도, 우리 네 식구에게도 한 지붕 두 가족 살이의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갔고, 사춘기 조카의 한숨은 날로 깊어져 갔다.
추진하던 많은 계획들이 다 나가떨어지면서 가뜩이나 말이 없던 남편은 입을 봉해버렸고, 마음이 상한 나는 틈만 나면 지하실이나 조카 방 동굴에 들어가 숨게 되었다. 어떻게 되어 가냐고 물으셔도 되어 가는 게 없으니 할 말이 없고, 시간이 갈수록 물어보시기도 미안하고 민망하고. 추석날 아침의 취준생과 할 말 없는 친척 어른처럼 밤고구마 백 개 먹은 듯 어색하고 답답한 하루하루를 그렇게 흘러 보냈다. 반평생을 멀리 떨어져 살아온 형과 동생에게, 그들의 아내들과 사촌지간의 아이들에게 평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동거의 기회인 걸 알고 있었기에 서로 더 깊이 알아가며 동고동락하고 싶었지만,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한 공간을 나눠 쓰는 것 자체가 점점 더 힘겹고 부담스러워졌으니 말이다. 쓰러져가는 방 한 칸짜리 집이라도 좋으니 우리끼리만 있고 싶었다. 어쩌면 우리끼리만 있으면서 아무 때나 울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발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여기를 떠나게 해 주세요...’
잠들기 전에도, 자다가 새벽에 잠깐 눈이 떠져도, 주문을 외듯 같은 기도를 했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는 길에도, 둘째 아이와 동화책을 읽거나 레고 집을 만들다가도, 미친 사람처럼 중얼중얼 주문을 욌다. 아니, 기도를 했다. 아니, 떼를 썼다. 제발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우리를 건져 달라고.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외국인에게서 이메일이 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두 시간 뚝딱거려 보내버린 이력서가 통과되었다고, 전화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금요일 오후 두 시에 시간이 괜찮으면 전화를 주겠단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경리, 비서, 관리, 영업... 직무 기술에 쓰여있던 업무 중 어느 것 하나 해본 적 없는 마흔 살의 아줌마였다. 한때는 이력서 한 줄에 목숨을 걸고 빛나는 청춘을 회사에 갖다 바친 커리어우먼이었지만, 퇴사 후 4년간 프리랜서와 경단녀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던 영락없는 아줌마였다. 남편이 인터뷰 준비한다고 깨알같이 적어놓은 예상 질문과 답변들을 꺼내 읽어보니 자신이 더 초라해졌다. 한참을 묵상하고 머리를 쥐어짜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원 동기부터 턱 막히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됐든 엎질러진 물이고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에라 모르겠다, 그냥 솔직하게 얘기해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그간 해온 일은 이런 거라고, 지원한 자리의 업무들을 해본 적은 없지만 가르쳐만 주면 잘할 자신이 있노라고... 생각만 해도 궁색해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드디어 금요일. 남편은 볼 일이 있어 나가고 큰아들은 학교에 가고, 둘째 아들에게는 아이패드를 쥐어줬다. 오후 2시가 되자마자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짙은 인도 발음이 들려왔다. 뭐라고 하는 건지 알아듣기가 힘들어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인도 여자 인터뷰어는 내 이력서를 꼼꼼하게 읽은 것 같았다. 지난 몇 년 간 프리랜서로 가끔 일을 받아 하고 있던 회사들을 적어 냈더니 이 일로 급여를 받고 있냐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왜 우리 회사에 지원을 했냐, 경리나 비서, 관리나 영업을 해본 적 있냐는 질문도 당연히 있었다. 콜드 콜(cold call, 거래 관계가 없는 상대에게 접근하거나 전화를 걸어 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돌려본 적이 있냐고도 물었다.
경리 경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경영학을 복수전공해서 회계 기초지식은 있다고, 템플릿을 주고 어떻게 하는 건지 설명만 해주면 그 정도는 무리 없을 거라고 했다.
비서와 관리 경험? 없다고 했다. 두 아들을 키우며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 자체가 365일 24시간 비서와 관리직으로 사는 거라고 했다. 인터뷰어는 박장대소를 했다.
영업 경험? 콜드 콜은 돌려본 적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제안서를 수도 없이 썼고 내가 쓴 제안서가 채택되어 일을 따온 적도 있다고, 프로젝트를 파는 것도 일종의 영업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내 옆에서 아이패드로 뽀로로를 보던 둘째가 다른 거 틀어달라고 소리를 꽥 지르는 바람에 인터뷰 도중 한 손으로 스와이프까지 해가면서 계속 드립을 쳤다. 인터뷰가 끝나고 인도 여자는 다음 절차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현장(in-person) 인터뷰를 거쳐 내가 만약 채용된다면 자기 밑에서 일하고 자기한테 보고하는 구조라면서,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할 것 같냐고, 아이들은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도 물었다. 첫째는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문제가 없고, 둘째는 동네 어린이집을 알아볼 거라고 했다. 아빠가 백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시계를 보니 2시 40분이었다. 둘째 아이는 내복에 수면조끼까지 입고 옆에 앉아 있는데, 내 얼굴은 화끈거리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사람이 벼랑 끝에 몰리면 이렇게도 될 수 있구나 싶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웃었다. 그나마도 오랜만에 웃어보는 웃음이었다.
아줌마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