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엔딩 서프라이즈

이제 뿌리를 좀 내려보려던 찰나...

by 드리머소녀

남편은 시카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큰아이는 씩씩하게 현지 학교에 적응해가고, 두 사람을 사회로 진출시킨 나도 둘의 생활 리듬에 맞춰 활력을 찾아갔다. 맑은 날이면 아침 7시에만 눈을 떠도 조카 방 블라인드 사이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쌔근쌔근 잠들어있는 둘째 아이 옆에서 나뭇가지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잠시 기도했다. 오늘 하루도 우리 가족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살아 내기를, 잘 버텨 내기를.


마스터 베드룸에서 자고 일어난 큰집 식구들이 부엌으로 내려가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서 샤워를 하러 갔다. 아무리 한 지붕 아래 산다지만 자다 일어나 폭탄 맞은 머리로 2층 복도에서 아주버님을 마주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주버님도 피차일반이었겠지만 말이다. 출근하는 남편과 등교하는 아이의 도시락을 싸고 아침식사를 챙겨 먹여야 하는 분주한 아침이었지만, 일찍 출근하시는 형님이랑 같은 시간에 부엌에 내려가면 준비하시는데 걸리적거릴까 봐 시간을 계산하며 움직였다. 형님이 아주버님과 조카에게 허그하며 “Bye! I love you!” 인사를 하실 때쯤 나도 내려가 “Bye, 형님! Have a good day!” 인사를 하고는 눈썹을 휘날리며 내 할 일을 했다.


남편과 큰아이를 보내고 나면 둘째와 함께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는 점심에 먹을 것 준비까지 싹 끝내버렸다. 마음이 내키는 날은 저녁에 먹을 국이나 반찬까지 미리 만들어 놓기도 했다. 하루 종일 부엌에 서있고 싶지 않아서 그랬는지, 딱히 바쁜 일이 없는데도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습관이 생겼다. 가스불 서너 개씩 한꺼번에 켜놓고 멀티태스킹을 하는 내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방 일을 끝내고는 둘째 아이와 함께 지하실에서 책을 읽거나 레고를 가지고 놀거나 축구를 하다가 유튜브로 키즈 채널을 틀어주고 구인구직 사이트들을 한 바퀴 훑어보는 게 나의 오전 루틴이었다.


큰아이는 3시 23분에 하교를 했는데, 하교 시간 20분 전부터 자녀들을 픽업 온 차량들로 주차장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은 학교 밖으로 몇백 미터씩 차들이 줄을 서 있기도 했다. “때르르릉~” 요란한 하교종 소리에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나와 제각각 자기 부모의 차를 찾아갔다. 매일 같은 곳에 주차하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잘들 찾아가는지 신기했다. 학교가 아주버님 댁에서 걸어 다닐만한 거리라 둘째 아이를 중무장해 유모차에 태우고 큰아이를 데리러 학교 앞으로 갔다.


처음에는 멀리서부터 엄마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며 나오던 아이가 몇 달이 지나니 친구들 한두 명과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하교 직전 체육 시간이 있는 날은 체육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나오기도, 더듬더듬 브로큰 잉글리시로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출입문 앞에 서있던 엄마를 지나치기도 했다. 친구들이 “Bye! See you tomorrow!” 외치는 소리가 아이 이름과 함께 들려올 때면 살을 에는 추위에도 내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졌다.


친구와 함께 나온 날은 대화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Photo by dreamersonya)


하얗게 눈이 내리는 날은 숙제도 제쳐두고 아이들에게 스노 팬츠를 입히고 부츠를 신겨 뒷마당으로 뛰어나갔다. 마당 경사진 곳에서 아이들과 눈썰매를 타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가끔은 사춘기 소녀 조카도 같이 나와 눈싸움을 하며 놀기도 했다. 우리는 강아지들처럼 신이 나서 눈밭에서 뒹굴며 깔깔거렸다. 손발이 젖고 추워지면 집에 들어가 핫초코를 타서 호호 불며 마셨다. 춥고 혹독한 시카고의 겨울이었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들만 남았으면 했다.


뒷마당 프라이빗 눈썰매장에서 신이 난 아이들 (Photo by dreamersonya)




새로운 일상이 제법 익숙해져 가던 어느 날, 남편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국 동부의 한 회사에서 급히 사람을 뽑고 있는데 당신이 적임인 것 같아 연락했다고. 혹시 아직 구직 중이고 관심 있는 자리라면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최대한 빨리 보내보라는 것이었다. 구글맵에 검색해보니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근처였다. 이제 막 시카고에서 소소하게나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큰아이도 학교에 적응해 즐겁게 지내기 시작하고, 사람 여행을 하며 이곳에서 뿌리를 좀 내려보려던 찰나였다. 더군다나 그곳은 우리 부부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고 남편 같은 이력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자리인 것 같았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지원하는 데다 급하게 요청이 온 걸로 보아 채용 확률이 비교적 높을 것도 같았다. ‘코스트코보다는 낫잖아...’ 한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남편은 밤늦게까지 지하실 구석에 쭈그려 앉아 지원서를 열심히 매만져 송부했다. 그리고는 며칠 후, 출근한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 점심시간에 전화 인터뷰 잡혔어. 갑자기 연락이 와서 오늘 바로 하자네.”


여러 번 이런 과정을 겪다 보니 맷집이 세졌는지 별로 긴장되지도 않았다. 그간 연습도 많이 했으니 인터뷰는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이 길이 우리가 가게 될 길이라면 앞으로의 모든 과정이 평탄하고 수월하기를, 무엇보다 결정하는 남편의 마음에 평안과 확신이 있기를 바라고 기도했다.


그날 실무진과의 전화 인터뷰는 성공적이었고, 일주일 후 현장(on-site) 인터뷰를 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시카고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였다. 미준모(네이버 미국 이민 카페)에 올라와 있는 인터뷰 후기들을 찾아보니, 지원자가 현장 인터뷰에 오고 가는 비용을 회사가 전액 부담하기 때문에, 타주에 있는 지원자를 불러들인다는 건 채용 확률이 이미 상당히 높아진 거라고 했다. 하지만 회사 근처 동네나 학교 검색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섣불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김칫국을 들이마시다 지난번처럼 바닥으로 추락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남편은 인터뷰 전날 밤 그곳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국내선 항공권을 구매하고, 회사 근처 호텔과 렌터카를 예약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날들이 또다시 시작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