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리머소녀 Sep 18. 2020

크레이지 코리안 아줌마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우리 동네

우리 가족이 이사한 집은 여러 가구들이 벽을 맞대고 있고 마당이 없는 형태의 타운홈이었다. 집 한 채(unit)를 온전히 우리 가족끼리 쓰기 때문에 층간소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집들이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고 차고 문만 열고 나가도 이웃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어 프라이버시는 별로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에 필요한 생필품과 식재료를 사다 나르던 어느 날, 우리 집 드라이브웨이(차고 앞에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와 옆집 드라이브웨이 사이에서 놀고 있는 갈색 머리의 남자아이 두 명을 만났다.


"Hello!"

"Hello! 우리는 얼마 전에 이 집에 이사 왔어. 너희들은 어디에 사니?"

"이사 온 거 알고 있어요. 우리는 저기 오른쪽 끝 집에 살아요. 이 동네 아이들은 서로 집 초인종을 누르고 불러 내서 같이 놀아요. 너무 재미있어요."


미국 나이로 11살(5학년), 5살(유치원) 아이들이었다. 서로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불러 내서 같이 논다니, 에이 설마, 여기가 한국인가 싶었다. 시카고 아주버님 댁에서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었는데, 시카고와 메릴랜드 사이가 그렇게 먼가 생각했다. 얼마 후 왼쪽 옆집에 사는 갈색 머리의 12살(7학년) 여자아이도 만났다. 드라이브웨이에다 분필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손짓하며 같이 그리자고 했다. 오른쪽 끝집 남자아이들도 뛰어나와 다섯 명이서 드라이브웨이와 보도에 신나게 그림을 그리며 한참을 놀았다. 아파트 단지 주차공간에서 동네 아이들과 분필로 그림을 그리며 놀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동네에 아이들이 많아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왼쪽 옆집 아저씨가 나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햇볕에 그을렸는지 가무잡잡한 피부에 빡빡머리를 한 동양인 아저씨였다. 어디서 이사 왔냐고 묻길래 작년에 한국에서 이민을 와 일리노이주에 살다가 왔다고 했다. 아저씨는 엄청 반가워하면서 본인도 여섯 살 때 한국에서 이민을 오고는 여태 한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듣고 보니 아저씨는 독일계 미국 여자와 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메릴랜드에 정착해 살고 있던 거였다. 꽤 오랫동안 도심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다가 몇 년 전 아저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부모님 댁을 처분하고는 혼자된 어머니와 함께 타운홈으로 이사를 한 거라고 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전혀 모르고 집을 골랐는데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신기했다.


얼마 후 오른쪽 끝 집 남자아이들의 엄마와도 만났다. 아줌마는 까만 펄 레깅스에 까만 탱크탑을 입고 위에는 그레이 숏 가디건을 살짝 걸친 채 아찔한 S라인을 뽐내며 상큼 발랄한 말투로 잘 왔다고, 환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한창 퍼지고 있던 때여서 트럭 한 대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서 대화를 나눴는데, 자기 아버지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이민자이고, 어머니는 독일계 백인이며, 남편은 필리피노-이탈리안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자기 아이들은 1/4 아시안, 1/4 히스패닉, 1/2 백인이니 "We are all Asian (우리 모두 동양인이네)!”라면서 깔깔 웃었다. 남편이랑은 한국 동두천에서 미군 복무 중에 만났고, 자기네 가족은 한국 동두천, 태국 방콕, 미국 여러 지역에서 복무하며 살다가 메릴랜드에 정착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 살 때 맛있는 음식들 덕분에 너무 행복했다면서 요즘도 생각날 때마다 H마트에서 총각김치를 사다 먹는다고 했다. 삼겹살, 비빔밥, 갈비, 불고기, 육개장, 떡볶이, 오뎅... 미국 아줌마의 입에서 줄줄이 흘러나오는 한국 음식 가짓수와 완벽에 가까운 발음이 참 놀라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우리 동네에는 인도인 가족, 중국인 가족, 백인 가족, 흑인 가족, 집집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지만 각자의 문화와 언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의 차이점으로부터 자연스러운 배움이 이루어지는 곳. 우리 아이들만 다르게 생겨서 너무 튀지 않고, 그렇다고 한국인들 사이에서만 지내지 않으면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는 곳.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다문화 동네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아이들이 행복하게 함께 어울려 노는 시간 (Photo by dreamersonya)




메릴랜드주 셧다운이 끝나자 진짜로 하루에도 몇 번씩 띵동, 띵동, 초인종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미 불려 나가서 놀고 있는데 다른 집 아이가 또 찾아오기도 하고, 셧다운 직전에 이사 온 한국인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대단했다.


"Can you come out? (나와서 놀 수 있어?)"

"Yes, of course! (그럼!)"


코로나로 학교도 닫아버리고 방바닥만 긁던 우리 아이들은 동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기 시작했다. 스쿠터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니다가 너프건으로 총싸움도 하고, 축구, 피구, 배드민턴도 하고, 드라이브웨이에 그림도 그리고, 집집마다 쌓여있는 재활용품을 끌어내 미술 작품도 만들면서 말이다. 어른들이 굳이 플레이 데이트(playdate)를 주선해주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밖에 나와 자유롭게 놀잇감을 찾아 창의적으로 노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특히 한국과 시카고를 떠나며 많은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던 큰아이에게 동네 친구들의 존재가 큰 위로가 된 것 같아 더없이 감사했다.


한편 둘째 아이는 동네 아이들의 ‘인싸’로 자리를 굳혀갔다. 고슴도치 맘 눈에야 우리 도치만 보이지만 동네 사람들도 “Oh my goodness, he is so cute, he is so adorable (아들이 너무 귀엽다, 사랑스럽다)!” 웃으며 말을 거는 걸 보니 그들 눈에도 아이가 귀엽기는 했나 보다. 하루는 누나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동네를 쏘다니고, 또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아이의 유모차를 서로 밀어주겠다고 줄을 서기도 하고... 덕분에 인싸 맘의 어깨가 으쓱했다.


누나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우리 동네 인싸 (Photo by dreamersonya)




어느 날은 아이들이 놀잇감을 못 정해 투닥거리다가 각자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희들 다 일로 와봐. 아줌마가 한국 게임 하나 가르쳐줄게."


우리 집 드라이브웨이에 분필로 커다랗게 네모를 그리고 그 안에 칸을 그리고 숫자 1, 2, 3, 4... 8을 적었다. 그리고는 잔디밭에 가서 돌멩이를 하나씩 주워오라고 했다. 돌멩이를 주워온 아이들을 쪼르르 줄 세워놓고 내가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아파트 주차장에서 매일같이 하던 팔방놀이를 열심히 가르쳤다. 돌멩이를 1에다 던지고 콩콩 뛰어 1단을 끝내고, 2단을 끝내고, 그렇게 8단까지 다 끝내면 천국(Paradise)에 가는 거라고 설명하며 시범을 보였다. 한 발로 뛰는 게 생각보다 힘들고 숨이 차는 내 모습이 낯설고 마흔이라는 내 나이가 실감이 났다.


아이들은 처음 해보는 팔방놀이에 열광을 했다. 처음에는 큰아이와 왼쪽, 오른쪽 옆집 아이들만 같이 했었는데 나중에는 앞집 흑인 아이들도 나오고, 급기야 옆집 한국 아저씨까지 나왔다. 다 큰 아들이 손녀와 팔방놀이하는 걸 베란다(deck)에서 지켜보시던 옆집 할머니는 당신 소싯적에도 한국에서 하시던 놀이라며 껄껄 웃으셨다.


동네 아이들은 해 질 녘까지 우리 집 드라이브웨이에서 열심히 콩콩 뛰었다. 그러더니 자기들 집 드라이브웨이에 더 어려운 버전을 만들어 옮겨 가기도 하고, 나름대로 새로운 룰도 만들어내고, 어린아이들은 깍두기로 끼워주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깔깔깔~ 하하하 호호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지고, 동네 사람들은 2층 베란다와 창문으로 처음 보는 희한한 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크레이지 코리안 아줌마를 구경했다.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비슷하구나 생각했다. 여기가 이제 내가 속한 곳이라고, 태평양 건너 미국 메릴랜드의 이 아이들이 내 인생에 들어온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 동안 함께 이 곳을 웃음 넘치는 따뜻한 동네로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팔방놀이를 하는 미국 아이들 (Photo by dreamersonya)


이전 22화 남편의 셔츠를 다리다가 눈물이 터졌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