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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소녀 Oct 07. 2020

응? 가을 학기도 100% 온라인 교육?

제발 엄마 좀 살려줘...

이사 후 메릴랜드주 공립학교에 큰아이를 등록하는데만 한 달이 걸렸고, 매주 과제만 다운로드, 업로드하다가 한 학기가 얼떨결에 마무리되었다. 원래는 성적표에 과목별로 A, B, C, D, F로 평가한 성적과 함께 교사들의 코멘트가 오는데, 2020년 봄학기 성적표는 과목 옆에 Pass/Fail만 찍혀있는 종이 쪼가리가 날아왔다. 사상 초유의 팬데믹 속에서 한 번도 다녀보지 못한 학교에 영문 모를 숙제를 제출하느라 매일 앉아있던 아이도, 아이랑 책상 앞에만 앉으면 분노조절장애 증상이 도지는 나도, 참 수고가 많았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영어로 된 재미있는 책이나 조금씩 읽히고 동네 아이들이랑 신나게 놀면서 말이나 배우게 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여름휴가 시즌이 되자 왼쪽 옆집은 텍사스 외할머니 댁으로, 오른쪽 옆집은 노스캐롤라이나 비치 하우스로 2주씩 여행을 떠나버렸다. 여기 사람들은 휴가 일정도 맞춰서 가는지 온 동네에 적막이 흘렀다. 코로나고 뭐고 즐길 거 다 즐기고 사는 미국 사람들이 참 신기했다. 남편은 출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휴가 내기가 힘들 것 같다며 미안해했지만, 사실 아이들 데리고 외식하는 것도 꺼려지고 어디서 자고 오는 것도 찝찝한데 휴가를 낸들 어디를 가고 싶을까. 동네 구경도 아직 제대로 해보지 못해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다행히 동네 수영장을 개방해주어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두 번은 물놀이를 다녀왔다. 최소 24시간 전까지 가족 단위로 한 타임(2시간)씩만 예약이 가능했고, 입장 인원이 제한되어 있었다. 출입구와 샤워실, 탈의실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였고, 회원 카드와 예약 내역을 체크하고 입장할 수 있었다. 샤워실을 이용하는 사람도 없는 걸 보니 아예 수영복 차림으로 비치 타월만 챙겨 가서는 물놀이 후 그대로 타월을 두르고 집에 가서 씻는 것 같았다. 한 타임 당 50명으로 인원을 제한해 놓았는데, 주말에도 그 넓은 수영장에 네다섯 가족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 사람들도 수영장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나 보다. 덕분에 우린 넓고 쾌적한 수영장을 전세내고 여름을 즐겼다.


물개가족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기에 완벽했던 우리 동네 수영장 (Photo by dreamersonya)


어느 날은 방바닥을 한참 긁다가 동네 개울가에 가서 돌멩이를 주워 오기도 하고, 다음날은 주워온 돌멩이를 물감으로 색칠하고, 비 오는 날은 에어컨을 틀어놓고 도리토스를 집어먹으며 영화도 한 편 봤다. 무더위에 나 혼자 아들 둘을 감당하려니 얼마나 하루가 영겁 같고 동네 아이들이 보고 싶던지, 나중에는 날짜를 세면서 기다렸다.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시간이었다. 옆집 누나가 텍사스에서 돌아오던 날 아침, 드라이브웨이에 그림을 그리겠다며 나간 아들이 뭘 하는지 내다봤더니 누나네 집 앞에다 분필로 "Welcome Back" 사인을 그리고 있는 거였다. 큰아이도 친구들이 어지간히 그리웠었나 보다. 옆집 누나는 휴가지에서 아이들 선물까지 살뜰하게 챙겨다 주었고, 오랜만에 다시 뭉친 동네 아이들은 눈물겹게 반가워하며 매일같이 깔깔거리며 함께 놀았다.


여름휴가가 끝나고 동네 아이들이 다시 만나던 날 (Photo by dreamersonya)




기나긴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카운티 교육청으로부터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가을 학기도 100%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온라인 교육은 모두에게 새로운 방식이다 보니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예상되지만, 부디 “Patience(인내)”와 “Grace(은혜)”를 갖고 학교와 선생님들을 응원해달라고 강조했다. 교사-학생 간 상호작용을 늘리고 최대한 오프라인 교육과 동일하게 진행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구구절절 써놨는데,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설마설마했는데 내 아이는 물론 많은 미국 아이들이 9개월 동안 ‘학교’라는 곳을 다니지 못하게 된 거였다. 8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무려 4개월을 더 집에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을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어떤 주는 온/오프라인 방식을 부모가 선택하기도 하고, 어떤 주는 오프라인으로 결정했다가 부모들의 반대가 심해 온라인으로 급선회하기도 하고, 또 어떤 주는 한 반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2회 오프라인, 3회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선택하기도 했다. 주 5일 등교를 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는데도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이 걱정되어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부모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이번 기회에 아예 홈스쿨링으로 전환했다가 학교가 정상화되면 등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부모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하이브리드 방식도 아니고 딱 잘라서 100% 온라인으로 진행하겠다는 우리 교육청이 좀 원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오픈했어도 과연 마음 편히 아이를 보낼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아이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6-7시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스스로 사회적 거리를 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혹시라도 학교에 확진자가 생기면 또다시 문을 닫고 우왕좌왕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준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오픈만 해놓고 학교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개학 직전, 학교에 크롬북(노트북)과 교과서를 받으러 가는 날이 있었다. 차를 몰고 학교 건물 앞까지 가서 담임 선생님을 차 안에서 만나 인사하고 교과서를 받아오는 “Meet and Greet” 행사였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차로 3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그날 학교 앞에는 행렬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차들이 한 대 한 대 느릿느릿 빠져나가는 데 중간에 돌릴 수도 없고 아이들과 무려 50분을 차 안에서 대기해야 했다. 밤고구마를 백 개 먹은 듯 답답했다. 앞차의 백인 아줌마도, 뒤차의 인도 아줌마도 동공이 풀린 채 유체이탈 상태였다. 앞으로 한 학기가 될지, 한 학년도가 될지, 온라인 교육 현장에서 버텨나가야 할 깝깝한 세월에 한숨만 나왔다. 코로나로 변해버린 세상, 바뀌어버린 판에 과연 나와 내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하루빨리 컨택트 시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간절해졌다.


Meet and Greet? 굳이 이 더위에 이렇게까지 해야되는 걸까... (Photo by dreamerso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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