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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소녀 Oct 02. 2020

길거리 영어로 서바이벌을 넘어...

영알못 아들의 미국 생활 적응기

메릴랜드주 자가격리 명령이 해제되고 매일같이 동네 아이들과 뛰놀던 큰아들은 불과 몇 달 만에 영어 회화가 엄청나게 늘었다. 오전 과제 시간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동네 아이들과 같이 바깥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알게 모르게 하루 종일 영어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Um... um...”으로 문장을 시작하면서 머릿속에서 적당한 단어나 표현을 찾아내려고 애쓰기도 하고 어려운 단어가 들려오면 어리둥절해질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든 해내는 것 같았다. 워낙 재잘재잘 말이 많고 목소리가 짹짹거려 그런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절반 이상이 내 아이 목소리인 것 같았다.


하루는 오른쪽 옆집 아이와 놀다가 말싸움이 붙었는데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혹시나 영어를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을까 봐 조심조심 내려가 차고 문 앞에서 다투는 소리를 엿듣고 있었는데, 세상에... 아이가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것이었다. 평생 동안 영어를 공부해온 나도 영어로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혀가 꼬이던데. 이건 이러이러해서 니 잘못이고 내 잘못은 없다고, 변명하지 말고 그만 너네 집으로 가보라고 우렁차고 당차게 말하는 거였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영어가 딸려 무작정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러다가는 얼마 못 가서 내가 아이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아이의 영어보다는 한국어 유지를 고민할 날도 오겠구나 싶었다.


코로나 사태가 조금 완화되면서 왼쪽 옆집 아이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온 가족이 함께 다녀왔다. 왼쪽 옆집 식구들, 그 집 친척들, 오른쪽 옆집 식구들까지 열댓 명이 모여 그릴에 구운 햄버거 패티와 소시지를 빵에 끼워 먹고 마시며 오후 내내 놀았다. 옆집 아이가 직접 만들었다는 3단 컵케익에 초를 꽂고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모두들 빙 둘러앉은 자리에서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을 풀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갑자기 큰아이가 영어로 개그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브로큰 잉글리시로 옆에 앉은 백인 아줌마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아줌마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어느덧 영어로도 개그를 시도하는 아이 모습이 얼마나 웃기고 또 대견하던지.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남편이랑 당신 같으면 저렇게 할 수 있겠냐, 얘는 대체 누굴 닮은 거냐며 웃었다.


물론 길거리에서 배운 아이의 영어,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기는 했다. 3인칭 단수 주어는 동사 뒤에 '-s'를 붙여야 한다는 건 잊어버리기 일쑤고, 동사의 과거-과거분사형도 어물쩡 대충 말할 때가 많다. 간단한 단어 스펠링도 헷갈려하고 문장을 시작할 땐 대문자를 써야 한다는 것도 잊곤 한다. 영어를 글로 배운 영문학도 엄마는 저러다 문법적으로 부정확한 문장들이 입에 배어버리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도 된다. 하지만 영어교육의 대가 이보영 선생님이 강조하시듯, 외국어는 정확성보다는 유창성에 먼저 중점을 두는 게 맞는 것 같다. 발음이 좀 이상하더라도, 문법이 좀 틀리더라도, 아이가 자신의 의견, 컨텐츠, 스토리를 자신 있게 표현하는 유창성을 키워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유창성에다가 정확성을 더할 방법도 계속 고민해야겠지만 말이다.


학교도 안 가고 매일같이 놀며 서로의 ‘세상’이 되어버린 동네 아이들 (Photo by dreamersonya)




여름이 되자 동네 수영장도 개방하기 시작했고, 야외에서 훈련하는 스포츠 팀(야구, 축구, 미식축구)도 하나둘씩 활동을 개시했다. 큰아이는 한국에서도 동네 축구팀 소속으로 몇 년간 축구를 하다 왔는데, 시카고에서는 날씨도 너무 추웠거니와 아이 운동에 신경 쓸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메릴랜드로 이사 와서는 코로나로 모든 활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코로나 회복 2단계 발표와 함께 우리 카운티에서 축구클럽 시즌을 시작한다기에 테스트를 신청했다. 코로나로 학교도 못 가고 있긴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하는 운동이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테스트 전 코로나 바이러스 수칙이라는 엄청나게 긴 리스트가 메일로 왔다. 열이 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절대 테스트, 훈련 또는 경기에 참석하지 말 것, 코치와 스태프, 부모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서로 사회적 거리를 둘 것, 선수들도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항시 소지하고 축구공이나 물통을 다른 선수와 공유하지 않을 것...


테스트하던 날은 아이들이 스무 명 남짓 왔는데, 대부분은 백인이었고 히스패닉으로 보이는 아이 하나가 있었다. 동양인은 내 아이뿐이었다. 저글링, 드리블, 패스, 슈팅까지 여러 가지 공 다루는 스킬을 평가하고 모의 시합도 했는데, 아이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최선을 다해 뛰었다. 멋진 골을 세 개나 터뜨리며 응원하던 엄마, 아빠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하마터면 두 팔을 번쩍 들고 “대~~ 한민국!!!”을 외칠 뻔했다.


아이는 그렇게 동네 축구팀 32명 중 유일한 동양인 선수가 되었다. 여름학기 단기 훈련을 거쳐 이제 가을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은 동네 축구장에서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메릴랜드 전역으로 경기를 하러 다니느라 꽤나 바빠졌다. 코로나로 움츠러들어 한동안 행동반경이 엄청 좁아졌었는데, 아들 덕분에 메릴랜드주를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는 싸커 맘(soccer mom)과 싸커 대드(soccer dad)가 되었다.


아이가 푸른 들판 위에서 뛰는 동안 나는 둘째와 축구장 옆 공터나 놀이터에서 놀거나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로를 걷곤 한다. 탁 트인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보는 석양은 장관이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은 축구장으로 와서 큰아이가 뛰는 모습을 본다. 아들이 골을 넣거나 멋지게 도움이나 수비를 할 때면 남편은 일주일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고 한다. 남편이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흐뭇하다. 녹록지 않은 미국 이민 생활이지만, 파란 하늘 아래, 푸른 풀밭 위에서 마음껏 공을 차는 큰아이, 놀이터에서 깔깔거리며 노는 둘째 아이,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남편을 볼 때면 그래, 우리 고생은 좀 했지만 참 잘 왔구나 싶다.


일상에 힘을 주는 아름다운 순간들 (Photos by dreamerso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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