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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소녀 Sep 15. 2020

남편의 셔츠를 다리다가 눈물이 터졌다

코로나 일상 속 반짝이는 선물들

메릴랜드 집에 무사 안착한 우리는 필요한 가구와 가전들을 최소한으로만 사기로 했다. 코로나 패닉 바잉 난리통에 물건을 사러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들기도 했고, 공간이 넓어졌다고 미국 집들처럼 존재감 충만한 가구와 물건들로 꾸역꾸역 채워 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나나 미니멀리스트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여백이 있는 공간은 있는 그대로 시원하게 두고 싶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가구라고는 옷가지와 이불 커버를 사이사이에 꾹꾹 눌러 담아온 3단 책장 4개와 디지털피아노가 전부였던 터라 필요한 게 꽤 많았지만 말이다.


침대는 프레임 없이 박스 스프링만 놓고 그 위에 매트리스를 올렸고, 아이들 매트리스는 방수커버만 씌워 카펫 바닥에 두고 쓰기로 했다. 다이닝룸 식탁과 의자, 주방 아일랜드용 스툴, 거실 소파와 커피 테이블, 남편 오피스에 둘 책상과 의자, 집안 구석구석 어두운 곳에 필요한 스탠드, TV, 청소기, 다리미, 헤어드라이어를 새로 구입했다. 대부분은 이케아에서 해결하고, 소파와 스툴은 밥스 퍼니쳐(Bob’s Furniture)라는 미국 가구점에 가서 열심히 앉아보고 주문했는데, 그 가구점은 예고도 없이 우리가 방문한 다음날부터 기나긴 휴업에 들어가 버렸다. 가구 구매 타이밍까지도 기적 같았던 때였다.


그렇게 완성된 그레이톤의 거실 (Photo by dreamersonya)




아이 학교는 우리가 도착한 다음 주부터 2주간 휴교하더니 곧이어 1개월 연장 공고를 했다. 2주 동안은 학교 오피스도 문을 닫아버려 등록조차 할 수 없었고, 필요 서류들을 스캔해서 송부하고 온라인으로 아이를 등록시키는 데만 거의 한 달이 걸렸다. 학교는 갑작스러운 팬데믹 상황에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아 우왕좌왕 멘붕 상태였고, ‘온라인 수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Schoology라는 학습 센터를 통해 여러 학습 콘텐츠로 연결되도록 링크만 해놓고는 ‘오늘 리딩 시간에는 Lexia 학습 사이트에 들어가서 20분 학습하세요,’ ‘링크된 책을 읽고 유튜브 영상을 본 다음 아래의 질문에 답해 보세요’ 이런 식의 과제들만 잔뜩 올라와 있었다.


그나마도 어느 날은 학습 센터가 다운되고, 어느 날은 학습 사이트가 다운되고, 인프라도 엉망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인터넷 속도가 더 느려져 업로드, 다운로드 모두 힘들었다. 게다가 모든 숙제가 서술형이라 아이의 영어 실력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오전 내내 아이 옆에 붙어 앉아 과제를 도와줘야 했다. 일주일 시간표를 나름대로 짜서 아이와 과제를 같이 하고, 금요일 오후에는 완성한 과제들을 사진 찍어 담임 선생님 이메일로 보냈다. 내 기분과 상태에 따라 칭찬, 격려도 했다가 이런 것도 아직 모르냐며 짜증내고 구박도 했다가 들쭉날쭉 널뛰기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이에게 수학 문제집 풀리는 모습만 봐도 진짜 엄마와 가짜 엄마를 금세 구별할 수 있다던 그 말은 사실이었다.


타이핑해서 업로드하는 것 보다는 손글씨로 써보는 게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숙제를 일일이 프린트해서 사진찍어 보냈다. (Photo by dreamersonya)




한편 남편은 메릴랜드에 도착하고 열흘 후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다. 열흘 동안 낯선 집(House)을 보금자리(Home)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온전히 함께해 준 남편에게도 고마웠고, 가족과 함께 잘 정착하고 나서 출근하도록 배려해준 회사에도 감사했다. 곧 출근할 남편의 셔츠와 바지를 오랜만에 다리기 시작하는데 우리가 함께 지나온 광야 같은 시간들이 영화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코로나 확진자와 함께 실직자 숫자도 날마다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는 팬데믹 속에 첫 출근이라니. 이 타이밍을 놓쳤더라면 우린 또 오랜 시간을 백수로 지낼 뻔했겠네. 시카고는 메릴랜드보다 더 빨리 셧다운에 들어갔다는데 하마터면 이사도 제대로 못할 뻔했네. 아주버님 댁 바로 뒷집 네 식구 모두가 코로나에 걸려서 구급차가 출동하고 난리가 났었다는데 일곱 식구가 한 지붕 아래서 출근도, 등교도 안 하고 지지고 볶았더라면 정말 어찌할 뻔했나. 불과 며칠만 늦게 떠났어도 화장지 한 쪼가리, 생수 한 병 없이 지낼 뻔했네. 감사의 제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올라 그만 눈물이 터져 버렸다.


남편이 첫 출근을 하던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남편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도시락을 쌌다. 마요네즈와 디종 머스터드를 바른 통밀빵에 햄, 치즈, 계란, 상추, 토마토와 자색양파를 차곡차곡 쌓은 샌드위치를 집락(Ziploc)에 넣고, 달달한 과자도 하나 넣었다. 출근길에 마시라고 커피도 내려 보온병에 넉넉히 담았다. 남편을 배웅하러 1층으로 내려가서 남편의 산타페가 차고에서 후진해 코너를 돌아가는 모습을 아득하게 바라보았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시카고의 겨울날 아주버님 댁에서 작은 사업체로 출근을 시작하던 남편, 우버를 타고 메릴랜드로 현장 인터뷰 차 떠나던 남편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잘 다녀와 남편... 새 출발 파이팅! 난 항상 당신 편이야...’


8시 정각에 출발했는데 8시 반쯤 벌써 회사에 도착했다고 카톡이 왔다. 원래대로라면 길이 막혀 한 시간쯤 걸렸을 텐데 25분 만에 도착한 걸 보니 이미 재택근무를 시작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출근한 남편은 며칠 후 메릴랜드주 셧다운과 동시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출근을 시작하자마자 재택 근무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낯선 곳으로 이사와 아이들과 꼼짝 못 하고 집에만 콕 처박혀 있어야 하는 상황에 남편이 당분간 함께 지낼 수 있다니, 그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태평양 건너온 컴퓨터와 키보드를 1층 오피스 책상에 세팅하고 작은 책꽂이와 스탠드를 놓으니 근사한 사무실이 되었다. 남편은 오피스 유리문을 닫아놓고 컨퍼런스 콜도 하고 업무도 하다가 식사 시간에 올라와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도심의 아파트 대신 외곽의 널찍한 타운하우스를 구한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은 인구밀도 때문에 코로나가 퍼지는 속도가 확실히 빨랐다. 집 안에서 재택근무도 하고 학교 공부도 하고 삼시세끼 차려 먹으며 살아가자니 여유로운 공간이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다.    


우리 집을 따뜻한 보금자리로 만들어가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우리의 식사였다. 형님댁 부엌데기로 지냈던 기간 덕분에 삼시세끼 집밥을 차려 먹는 건 이미 익숙한 상태였다. 어차피 하루 종일 어디 나갈 데도 없으니 레시피를 찾아보며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하나씩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집 앞에만 나가도 손쉽게 사 먹을 수 있었던 콩나물국밥, 보쌈, 낙지볶음, 김밥, 떡볶이 같은 흔한 음식도 재료를 구해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하는 수고가 들어가야 했다. 손을 쓰며 하는 일은 머리로 하는 일과는 다르게 결과물을 바로 내 눈과 입으로 확인할 수 있어 좋았고, 식구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뿌듯하고 보람도 있었다.


보쌈, 낙지볶음, 콩나물국밥, 라볶이 (Food & photo by dreamersonya)




집콕하던 어느 날, 남편은 사자 갈기처럼 덥수룩해진 머리를 내 똥손에 맡겨 보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남편은 친정엄마에 이어 드리머소녀 살롱의 두 번째 고객이 되었다. 아내 말고는 딱히 옵션이 없었기도 했고, 어차피 재택근무라 당분간은 사람 만날 일도 없을 테니 '에라 모르겠다' 생각도 했었을 것이다. 친정엄마 머리는 파마기가 남아있는 상태여서 가위로 살살 길이만 자르면 되었는데, 남편은 숱이 많아 가위만으로는 택도 없을 것 같았다. 유튜브에서 '집에서 남자 머리 자르기' 검색을 해보니 바리깡과 미용가위를 이용해 헤어컷 하는 영상이 여러 개 올라와 있었다. 바리깡에 3mm, 6mm, 9mm 클리퍼(clipper)를 차례로 끼우고 손목 스냅을 이용해 커트를 하는 영상을 흉내 내 보려다가 그만 남편 뒤통수에 조그만 시골길을 하나 내고 말았다. 긴장을 한 탓인지 손목에 힘이 너무 들어갔었나 보다. 수습을 해보려다가는 더 미안해질 것 같았다.


“흐흐흐 어떡하지... 고객님... 이발 끝났습니다.”

"허...... 음...... 처음 한 것 치고는 뭐 괜찮은데요... 다음 달에도 부탁할지 몰라요.”


남편은 그럭저럭 괜찮은 앞모습과 옆모습만 쓰윽 보고는 고맙다며 마트에서 국화 한 다발을 사 와 화병에 꽂아 두었다. 남편의 셔츠를 다리고 점심 도시락을 챙기는 것, 사랑하는 가족들이 먹을 밥상을 정성껏 준비하는 것, 아이와 함께 공부하고 책을 읽는 것, 남편의 머리를 잘라 주고 화병에 꽂힌 꽃들을 예뻐라 하는 것... 전에는 잘 알지 못했다. 이런 순간들이 그저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은 일상이 아니라 놀라운 기적이고 반짝이는 선물들이라는 걸.


남편이 사다준 꽃다발 (Photo by dreamerso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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