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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소녀 Sep 11. 2020

엄마, 사위가 취직했어요!

기막힌 타이밍에 미국으로 건너오신 친정엄마

“엄마 너희들 보러 가도 되니? 손주들 보고 싶어 죽겠는데......”

“......”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은 때는 남편의 캘리포니아 회사 인터뷰 결과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낙담하고 있을 때였다. 도무지 되는 일이 없이 답답하고 막막해서 제발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이 지긋지긋한 시카고를 좀 떠나게 해 달라고 떼쓰며 주문을 외던 때였다. 그때 친정엄마는 십수 년 전 캐나다로 시집와 얼마 전 넷째 아이를 출산한 동생의 산후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캐나다에 와 계셨다. 동생의 몸조리가 어느 정도 되고 나면 우리 가족을 보러 미국으로 건너오고 싶으신 거였다.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나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데도, 엄마가 많이 보고 싶고 그리웠는데도, 나는 선뜻 오시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주버님 댁에 얹혀 눈치 보며 사는 모습도, 외식 한 끼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도, 온 가족이 어리바리 헤매고 있는 모습도 별로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악물고 붙들어 매 놓은 내 마음이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무너져 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무래도 우리가 자리 좀 잡고 나서 오시는 게 낫지 않을까...” 


기운 없이 풀이 확 죽어 말 끝을 흐리는 내 목소리를 들으시고 엄마는 무조건 가봐야겠다 결심하셨단다. 그리고는 얼마 후, 시카고행 항공권과 호텔을 예매해버리셨노라 카톡이 왔다. 마음이 부담스럽다 못해 불편하기까지 했다. 절대 오지 마시라고 딱 잘랐어야 했나, 제발 조금 더 기다렸다 오시라고 간청했어야 했나... 손주들 얼굴이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는데 차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이 흘러 미국으로 건너오시기 위해 밴쿠버 공항으로 출발하려던 찰나, 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소식을 듣게 되셨다.


엄마, 사위가 취직했어요!!!


엄마는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하늘을 가르며 시카고까지 날아오셨다. 엄마랑 만나 회포를 풀 여유도 없이 우리는 코앞에 닥친 이사 준비를 위해 아주버님 댁에 풀어놓은 짐을 싸야 했고, 노동하는 동안 엄마는 둘째 아이를 봐주시고 식사도 챙겨 주셨다. 환상적인 시카고 다운타운의 야경 한 번 보여드리지 못하고 3박 4일 동안 집안일과 손주 육아만 부탁드리다 헤어지려니 마음이 무겁고 서운했다. 엄마는 시카고에 오로지 우리 얼굴 보러 오신 거고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까지 들었으니 여한이 없다고 하셨는데, 옆에 있던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장모님, 장인어른만 괜찮으시면 메릴랜드 저희 집에 오셔서 좀 지내다 가시죠... 요새 한국도 코로나로 난리잖아요.”


친정아빠는 한국에서 오매불망 엄마 오실 날만 기다리며 삶은 고구마와 감자로 연명하고 계셨지만, 미국에서 손주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며 흔쾌히 오케이 하셨다. 그리하여 엄마는 밴쿠버에서 시카고에 잠시 오셨다가, 다른 일정으로 친구분과 함께 덴버에 잠시 가셨다가, 다시 메릴랜드로 오셔서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다가 귀국하시기로 했다. 서부에서 중부로, 중부에서 다시 중서부로, 중서부에서 다시 동부로 삼세번 북미 대륙 횡단을 하시게 된 거였다. 역시 평생을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며 사시는 백말띠, 울 엄마 만세!




한편, 메릴랜드에 도착한 우리는 기아자동차에서 새 차 한번 뽑아보려다가 시간만 날리고 결국 카맥스(중고차 매장)에서 마음에 쏙 드는 2019년형 산타페를 만났다. 남편은 반짝거리는 산타페를 몰고 흐뭇한 얼굴로 장모님을 모시러 공항에 나갔다. 엄마는 메릴랜드 우리 집에 도착하셔서는 경치도, 주변 환경도, 차도, 집도... 어쩜 이렇게 모든 게 다 좋으냐며 감탄하셨다. 엄마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 모든 게 결코 쉽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기에 그 감동과 감격은 오롯이 우리 것이었다.


하기는 엄마도, 수개월째 백수로 지내는 사위와 형님댁 부엌데기가 되어버린 딸내미 모습을 상상하며 어찌하면 좋으랴 막막한 심정으로 항공권을 끊으셨을 터였다. 미국으로 건너오시기 직전 들려온 복된 소식에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우셨을까. 친정엄마만 놓고 봐도 정말 기적 같은 타이밍에 우리가 이곳으로 옮겨 오게 된 것이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엄마가 차려주시는 집밥도 먹고, 엄마랑 같이 가구도 보러 다니고, 밤에는 게스트룸 침대에서 손주들이랑 뒹굴거리며 노닥거리기도 하고... 이게 꿈이라면 깨어나기 싫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엄마, 내가 엄마랑 여기서 가구를 보러 다니고 있다니... 정말 꿈만 같다.”

“하하하, 이런 날이 오다니... 엄마도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엄마가 도착하시고 얼마 후 메릴랜드주의 마트와 병원, 약국 등을 제외한 모든 비본질적 사업장들(non-essential businesses)이 휴업에 들어가게 되었고, 우리는 하루 종일 집에 콕 처박혀 모든 걸 가내수공업으로 해결해야 했다. 하루 세 끼 식사시간이 다가오면 엄마 옆에서 보조하며 요리 꿀팁을 전수받기도, 힘들 때는 엄마랑 한 끼씩 돌아가며 차리기도 했다. 커피 한 잔씩 앞에 놓고 밀린 수다를 떨며 한국에 두고 온 사랑하는 이들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고, 주문한 가구가 도착하던 날은 집도 함께 꾸몄다. 심지어는 오랫동안 미용실에 가시지 못해 부스스한 엄마의 머리를 내 똥손으로 다듬어 드리기도 했다. 아침마다 성경도 같이 읽고, 화단에 심은 꽃과 상추도 가꾸고, 해 질 녘에는 아이들 데리고 동네 산책도 하며 하루하루 소박하고 알차게 보냈다. 주말에는 간단하게 도시락을 챙겨 워싱턴 DC로 벚꽃 구경을 가기도, 집 근처 산으로 하이킹을 가기도 하고, 역사 유적을 따라가는 길(Historic National Way)로 드라이브도 다녀왔다. 메릴랜드주가 게(Blue Crab) 요리로 유명한데 매장 내 식사는 안되고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길래, 비닐장갑과 플라스틱 식기류를 챙겨 바닷가 근처 피크닉 테이블에 둘러앉아 다 식은 게를 신나게 뜯어먹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들, 찬란한 순간들 속에 찬찬히 머물렀다. 함께 보낼 수 있는 날들이 유한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더 많이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하호호 많이 웃었다. 날마다 코로나 확진자 수는 수직 상승하고 있었지만 걱정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히기에는, 답답함이나 우울감을 느끼기에는, 감사의 제목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친정엄마와 함께했던 찬란한 순간들 (Photo by dreamerso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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