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꿈이 아니기를...

이민 생활의 두 번째 챕터를 시작하던 날

by 드리머소녀

시카고에서 볼티모어 공항까지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리노이주 코로나 확진자가 네 명에서 갑자기 열한 명으로 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불안한 마음에 아주버님께 덴탈 마스크 네 개를 얻었는데, 기내에 마스크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가 평온해 보였다. 아직 여기는 코로나 청정지역인가 보다, 안도하며 크로스백에 챙겨 넣은 마스크는 꺼내지 않았다. 볼티모어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고 한 시간 남짓 운전해 하룻밤 묵을 호텔까지 가는 길, 컴컴한 밤인데도 아름다운 곳에 와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시카고 서버브에서는 끝도 없이 뻗은 평지가 무미건조하고 황량하게 느껴졌었는데, 이곳에는 오르락내리락 언덕들이 있고 간간히 강과 개울도 보이는 게 어쩐지 우리가 떠나온 금수강산과 닮은 모습이었다. “어머, 여긴 벌써 봄인가 봐... 저기 꽃 핀 것 좀 봐!” 곳곳에 개나리가 벌써 피어나기 시작했고, 벚꽃 봉오리들도 맺혀있는 게 보였다. 메릴랜드 이른 봄의 야경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어느덧 자정이 넘었다. 대단히 긴 하루였다. 시카고 떠나기 전 중노동 하느라 팔다리가 쑤시고 허리와 뒷목이 뻐근했는데,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극도로 피로해서 그랬는지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자는 둥 마는 둥 누워있다가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들을 챙겨 8시까지 우리가 이사할 타운하우스를 점검(walk-through)하러 갔다. ‘우리 동네’에는 아담한 타운하우스들이 쭉 줄지어 서있었고, 알록달록 예쁘장한 싱글하우스들도 곳곳에 보였다. ‘우리 집’ 앞에는 중년의 백인 부동산 중개인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1층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프렌치 도어(양쪽으로 열리는 유리문)로 된 오피스(개인 사무실 또는 서재로 쓰는 공간)가 있었다. 아주버님 댁 지하실 귀퉁이에 하루 종일 쭈그려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던 남편의 뒷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웃음이 났다. 계단으로 올라가니 거실과 주방이 있는 탁 트인 2층 공간이 나타났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아도 될 만큼 널찍한 거실과 당장이라도 요리를 하고 싶게 만드는 환하고 반짝거리는 주방이 부엌데기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3층에는 마스터 베드룸과 작은 방 두 개, 화장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다. 창가에서 바라보는 뷰는 나무와 꽃과 연못, 건너 편의 아기자기한 집들이었다. 4층에는 로프트(Loft)라고 불리는 다락 공간과 옥상이 있었다. 세상에! 남편이 며칠 전 혼자 탐방 와서는 이렇게 멋진 보금자리를 준비해놓은 것이었다. 방 두 칸짜리 아파트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챕터를 이렇게 화려하고 황홀하게 시작해도 되는 건가... 눈물이 핑 돌면서 모든 것이 과분하게 느껴졌다. 이게 꿈이라면 깨어나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집안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차고, 가스레인지와 오븐, 음식물쓰레기 처리기(garbage disposal), 냉난방 시설 등의 사용법을 안내해주고는 Move-in Report(입주 후 하자를 적어내는 문서)를 건네주었다. 우리가 발견한 하자들을 2주 내로 상세히 적어서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렌트 기간이 끝날 때, 입주 시 적어내지 않은 하자가 발견되면 보증금(1개월치 월세)에서 수리비만큼을 제하고 돌려준다고 했다. 중개인이 떠난 후, 나는 남편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으며 말했다.


“자기, 집이 너무 멋지다! 이렇게 좋은 곳을 어떻게 찾았어... 고마워!”

“괜찮지?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야.”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어 감사한 이곳 (Photo by dreamersonya)


오전 11시쯤 되자 전날 오전 시카고에서 먼저 출발한 트레일러가 집 앞에 도착했다. 시카고에서는 커다란 백인 아저씨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박스들을 실어 날랐는데, 이번에는 두 팔에 문신을 새긴 장발의 백인 아저씨와 열세 살쯤 되어 보이는 그의 아들이 함께 왔다. 장발 아저씨는 커다란 아저씨의 친한 친구이고, 버지니아에 산다고 했다. 타운하우스에 계단이 워낙 많아 아저씨들은 1층 차고에서 3층 방까지 무거운 박스들을 나르느라 얼굴이 벌게져서 땀을 쏟으며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자주 쉬었다. 근처 마트에서 생수를 많이 사다 놓은 게 참 다행이었다.


아주버님 댁 지하실에 수개월간 쌓아두었던 주방용품 박스들이 새 주방에 도착했다. 한국 집에서 함께 살던 익숙한 살림살이들을 보니 오랜 친구들을 만난 듯 정겹고 반가웠다. 얼른 상자들을 뜯어 태평양 건너온 국그릇, 수저와 냄비를 꺼내 깨끗이 씻었다. 수고하시는 아저씨들에게 라면이라도 한 그릇씩 대접을 해야겠다 생각이 들어 "Would you like to try some Korean noodles? (한국 라면 한번 드셔 보실래요?)"라고 물었더니 좋다며 껄껄 웃었다. 스파이시한(매운) 음식은 뭐든지 좋아한단다.


커다란 냄비에 물을 끓이고 시카고 H마트에서 사 온 진라면 일곱 개를 털어 넣었다. 코 끝을 찌르는 라면스프 냄새가 집안에 진동을 하자 ‘아...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인가 보다’ 싶었다. 국그릇에 라면과 국물을 넉넉하게 퍼담았다. 계란이며 파며 아무것도 없어서 물과 스프만 넣고 끓인 라면이었지만 그 어떤 음식보다도 먹음직스러웠다. 커다란 아저씨와 장발 아저씨,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함께 주방 아일랜드에 둘러 서서 후루룩 짭짭 헉헉대며 라면을 먹었다. 커다란 아저씨는 장발 아저씨 젓가락질이 그게 뭐냐며 놀려댔다.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장발 아저씨는 스파이시한 라면을 좋아한다더니 국물 맛을 한 번 보고는 생수 한 병을 원샷했다. 무려 진라면 순한 맛이었는데 말이다.




이삿짐을 다 내린 후,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근처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다. 그런데 주차장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평일 낮이었는데 웬 차가 그렇게나 많은지... 매장 안에는 카트마다 화장지와 청소용품들이 가득하고 사람들 얼굴엔 근심과 짜증이 가득하고 계산 줄은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한참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시카고 식구들한테서 카톡이 왔다. 코로나가 갑자기 퍼지기 시작하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거기는 어떠냐고. 일리노이 주도 패닉 쇼핑이 시작되었으니 거기도 곧 시작될 거라고, 혹시 화장지 안 사놨으면 얼른 사두라고. 우린 있는 것 빼고는 다 없는 상황인데 오자마자 사재기라니 당황스러웠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어렵게 확보한 덴탈 마스크가 딱 네 장뿐이라 우리도 굳이 쓰지 않고 다녔다.


이날 이후 코스트코에서 화장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Photo by dreamersonya)


정신없이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짐 정리를 하다가 코스트코에서 사 온 스테이크와 샐러드로 간단하게 저녁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그릇과 수저를 다 버리고 왔더라면 그런 것들까지 사러 다니느라 정신 사나울 뻔했는데, 몇 가지라도 챙겨 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식탁도 없고 의자도 없는데 아일랜드에 서서 먹고 싶지는 않아서 태평양 건너온 이삿짐 박스를 뒤집어 깔고 그 위에 접시를 올려놓고 첫 저녁식사를 했다. 꿀맛이었다.


아마존에서 이사 날짜에 맞춰 주문해놓은 지누스(Zinus) 퀸사이즈 매트리스 두 개도 그날 도착해 마스터 베드룸에 나란히 세팅했다. 한국 떠나기 며칠 전 친정엄마와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이불 세트를 사서 해외 이삿짐으로 부쳤는데, 덕분에 첫날 저녁부터 쾌적하게 잘 수 있었다. 한국에서 준비해오지 않았더라면 패닉 쇼핑 난리통에 아이들 데리고 별 걸 다 사러 다니느라 고생을 할 뻔했다. 모든 게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새 보금자리에서의 첫 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두 발 뻗고 푹 잤다.


이 모든 게 꿈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